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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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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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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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스님/ 문사수 법회 회주 한탑 스님

인연 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한탑(72세, 속명 김경만) 스님이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관세음 보살님은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주시지. 관세음보살님께 네가 90점을 맞고 싶다고 간절히 말씀드리면, 90점을 받게 해준다.”

어린 소년은 곧이곧대로 그렇게 관세음보살님께 빌었고, 90점을 받았다. 아니, 95점, 100점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당시 스물한 살로 고려대학교 경상대학에 다니던 때였다. 맏이로서 어머니, 아버지, 동생 여덟을 데리고 피난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관세음보살님께 의지하는 일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부산까지 무사히 피난을 가게 되었고, 8월 16일(이 날 입대하게 된 것도 부처님의 큰 가피였다. 15일까지 입대한 이들은 포항으로 배치받게 되었고 10일 안에 다 전사했다.) 입대하였고 일본으로 훈련을 가기 전 부산 대각사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아, 이 많은 장병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 위해 이렇게 입대한 것 아닌가. 그래 모두에게 ‘옴마니반메훔’ 자비를 보내자.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청년 김경만은 대각사에 함께 유숙하게 된 사병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옴마니반메훔을 염해주었다.

일본에서 훈련을 마치고 9월 15일 드디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기 하루 전 9월 14일 뱃머리에 나가 두손을 모으고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렸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조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 여기서 살아가면 꼭 두 가지를 맹세하겠습니다. 첫째는 조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으며, 둘째는 부처님 법을 펴는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불교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이 어떻게 그런 마음을 내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면 사는 것이고 실패하면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인천에 상륙하여 한강을 건너고 압록강까지 가는 동안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겼는지 모른다. 오직 “관세음보살!” 어느 순간 쏟아지는 총알이 나를 피해가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순간적으로 얻었다. 인천상륙 작전은 성공으로 끝났고, 6년 후 군대를 제대하고 종로통을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소천 스님 금강경강의’라는 벽보가 확 눈에 들어왔다. 대각회 주최로 장소는 종로 3가에 있는 대각사로 쓰여져 있었다.

당시 대각회 회장을 맡고 있던 광덕 스님을 그곳에서 처음 만났고, 만나자마자 의기투합이 되었다. 그리고 소천 스님의 금강경 강의는 청년 김경만의 눈을 열어주고 귀를 열어주었다. 친아들 이상으로 아껴주시면서 항상 데리고 다니셨던 황대법선(황산덕 박사의 부인) 보살님을 만나면서 여러 큰스님들을 친견하게 되었고, 성철 큰스님도 그로 인연되어 삼청동 칠보사에서 처음 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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