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네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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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네 딸들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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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혹한과 폭설로 인해 특별한 기억으로 남겨질 겨울이 지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있다. 꽃봉오리를 틔우며 찾아든 봄소식이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모든 분들께, 한 시름 놓는 휴식 같은 여유를 가져다 주었으면 싶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사천왕사에서 이명희(45세) 씨를 만났다. 조금은 부끄러운 듯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수줍은 미소를 띄었다. 주저주저하며 자신의 지나온 역정과 생활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꼭 10년 전인 ’91년에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년 간의 기나긴 투병생활이었다. 간판 광고업을 하며 성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두 번의 교통사고로 54일간 구속되는 등, 모든 걸 잃고 번번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뜻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6년 사이에 네 딸을 낳았으니 부부 금실은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오뚝이처럼 쓰러지면 일어나는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있어 하던 남편이 갑작스레 쓰러졌다. 갑상선 암이었다.

남편 없는 삶이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남편을 살리고 싶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다가 남편의 치료비를 감당했다. 남편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고 성실하게 치료에 임했다. 병도 호전되어 차도를 보이는 듯 싶었으나, 방광암으로 전이되는 바람에 더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 세정(11세)이가 채 100일도 되기 전에, 남편은 네 딸과 1억이 넘는 빚을 남겨두고 감기지 않는 눈을 끝내 감고 말았다.

어디 손 벌릴 곳도 없었다. 시댁에서는 처음부터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한 데다, 딸만 낳은 죄인이라 며느리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친정의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오빠가 간암으로 2번의 수술을 받고, 동맥경화를 앓고 있었다.

“남편이 가고 정말 막막했지요.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아이들과 함께 길바닥 처마 밑에서 생활한 적도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이를 앙당 물고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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