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삭풍에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시원찮을 때에 엉뚱하게도 안개가 길 떠나는 사람의 발목을 건다. 딴은 도회의 소음과 살풍경이 보기 싫으니 실루엣을 연출해 살풍경한 도회의 모습과 소음을 가려주자는 하늘의 뜻도 있지 않을까, 애써 낭만적 해석으로 마음을 다독거리며 우리는 느릿한 걸음으로 길을 떠났다.

충북 경북 어름의 새재라는 고개가 통과를 어렵게 하는데 어쨌든 그곳에서 멀지 않다는 점촌만 찾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한데 겹겹한 산으로 갈라진 여러 동네를 수소문하고서야 대승사(大乘寺)가 위치한 산북면을 간신히 찾았고 사하촌에 이르러서는 이 지역이 얼마나 복받은 곳인지를 알았다.

두 갈래길 중 오른편으로 가면 대승사요, 왼편으로 들어서면 오히려 사세가 앞선다는 김룡사에 닿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불산 대승사는 그렇게 위용 있게 버티고 있는 절은 아니었으나 기암괴석 소나무 전나무 등속이 요리조리 앙증맞게 배합되어 있어 아기자기한 아름다움만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성싶었다.

‘돌 반 나무 반’일 만큼 척박한 땅이라서 뒤틀린 소나무가 흔한데, 유독 절 주위에 이르러서는 씩씩하게 버틴 전나무가 내방객의 눈길을 온통 빼앗었다. 찬 하늘에 당당하게 서 있는 품이 그야말로 찬기파랑가에 비의된 화랑의 기상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