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한두 주 동안 때맞춰 가야만 절경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내장산(內藏山) 단풍이 아니던가. 그래서 버스와 승용차, 오가는 사람이 지천으로 밀려드는 북새통을 마다하지 않고 반복해 오는 것이리라. 그러나 원색의 등산복 차림의 많은 인파 사이에서 정말 이 산의 그 내밀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있을지는 회의로 남는다.
단풍이 물 좋은 시간대를 지나 이제 겨울의 문턱에 서 있는 막바지에 내장산이 아니라 내장사(內藏寺)를 보기 위해 필자는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른 아침부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성급하게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은 가지에 물방울을 매단 채 우화(雨花)를 뽐내었고, 아직 단풍의 아름다운 자태가 어느 정도 남아있던 나무들은 화려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는 듯 길가에 수북히 쌓인 자신들의 분신을 굽어 보고 있었다. 뿐더러 산 밑의 감나무에선 홍시들이 비를 머금고 빼곡이 매달려, 낙엽으로 돌아간 단풍을 대신해 뒤늦게 산을 찾은 이에게 오롯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내장산의 협곡은 주차장과 위락시설이 모여있는 초입에서부터 3킬로미터에 이르지만 보행자들에게 지루함을 안겨줄 줄 모른다. 오히려 갈수록 강한 흡입력으로 발길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는데, 도열하듯 길게 뻗어있는 단풍나무의 터널 때문일 것이다. 한데 가을에만 이 산을 예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가을 단풍의 황홀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두터운 신록으로 진한 그늘과 냉기를 드리우는 여름이나, 나목과 함께 푸근한 설경을 빚어내는 겨울 또한 내장산의 아름다움으로 꼽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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