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정성은 모든 장애를 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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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정성은 모든 장애를 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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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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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해선림/ 울주군 인성암 선용(善用) 스님

“내래 산 속에서 벙어리로 살아가는지 오래디요.

무슨 할 말이 있갔시요.

그저 나 같은 늙은 중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디요.”

구수한 이북 사투리 속에 진하게 배어 있는 스님의 개인사야말로 이 민족의 수난사와 겹쳐지는 것이요, 이즈음 일고 있는 남북한 화해 분위기,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진화에 수행자의 덕화가 한몫 했으리라는 생각을 못내 떨칠 수 없어 스님을 더욱 뵙고 싶었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나들면서…

스님은 “왜 고향이 그립지 않겠소?”라는 한마디로 지난 세월을 일축하셨다.

“전생의 습이었던지 방학만 되면 일본으로 만주로 여행다니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군요.

여행방침은 항상 가는 차비만 들고 가는 것이었는데, 다급하면 용단이 생기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평남에서 태어나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신의주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중국어에도 능통해서 여비없이 여행 다니는 것이 가능했다.

정처없이 여행하다가 날이 저물면 일자리를 찾아 여비를 벌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렇듯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일과의 새로운 만남은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던 중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에 들어갔다가 해방 후 서울에 돌아와 복학준비를 하고 있는데 삼팔선이 가로막혀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막막한 것도 잠시, 고학을 하면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여행을 통해 얻은 산경험 덕분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교신자가 된 것은 전쟁터에서였지요.”

동족간에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말 그대로 민족적 비극이었던 6·25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했던 스님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시로 넘어들어야 하는 전쟁터에서 인생무상을 절감했다.

불바다 속에서 눈뜨고 숨쉬니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뿐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하는 궁극적인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특히 총을 질질 끌고다닐 정도로 어린 소년병들이 비상시 바짝 바닥에 엎드려야 할 때 총성에 놀라서 벌떡 일어나 죽어갈 때 그 비통한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한창 공부할 나이의 저 어린 소년들이 전쟁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가?’ 절규하다보면 입에선 관세음보살이 흘러나오고, 꽃다운 청춘을 조국에 바친 그네들을 위한 왕생극락의 염원이 뼛속같이 사무쳤다.

가장 비극적인 현장에서 가장 큰 고난을 통해 마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휴전이 되어 제대하고, 요양차 부산 송도에서 머무르다 범어사에 가게 되었는데 마치 고향에 온 듯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천 거북 만 자라라 일컫는 범어사의 바위 숲에 들어가 있는데 극락이 따로 없는 듯했다.

지나다니시는 스님들의 모습은 마치 신선 같았다.

팔베개를 베고 누워 하늘을 보니 ‘이곳이야말로 내가 살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종무소를 거쳐서 동산 스님을 뵙고 출가하고 싶다는 마음의 결심을 밝히자, ‘마을로 내려갔다가 깊이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올라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날 부산시내 밤거리가 왜 그리 어두워보였는지 모른다.

살 길이 마을에 있지 않고 절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이튿날 아침 동산 스님을 찾아 뵙고 입산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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