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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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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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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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해선림(敎海禪林)/경북 봉화 문수산 축서사 무여(無如) 스님

무여 스님은 194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6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 상원사,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관음사, 칠불사, 망월사 등 전국 선원에서 20여 년 동안 수선안거하였다. 87년도 이후 봉화 축서사에서 주석하시며 불자들의 마음문을 열어주고 있다. 칠불사와 망월사 선원 선원장을 역임하셨으며 현재 조계종기초선원운영위원장으로서 선의 가풍을 새롭게 정립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누구나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와 인생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현란한 색(色)의 시대, 완벽하다싶을 정도로 물질이 발달한 이 시대에 존재와 인생, 온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진리의 삶, 부처의 삶을 일구어가는 수행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무여 스님(조계종 기초선원운영위원장)이 주석하고 계신 축서사 홈페이지(http://www.chooksersa.org) 덕분에 기초취재와 배차시간을 알아보는 수고를 덜었다. 수행자와 첨단문명의 이기인 인터넷과의 관계에 미소짓고, 수행자가 머무는 인터넷, 수행자가 된 인터넷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니 어느덧 봉화란다.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것은

택시기사야말로 그 마을 인심의 대명사요, 정보통이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염주를 곱게 매단 축서사행 택시기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주 부석사의 형님절인데 쇠락해져 축서사 주지스님께서 도량을 크게 넓혀 옛 면모를 찾아가고 있지요. 얼마 전 절에 행사가 있었는데 온 마을이 주차장이 되었을 정도였어요. 주지스님은 수행을 많이 하신 큰스님이라고 합니다.”

축서사의 번영을 함께 기뻐하고 스님을 칭송하는 택시기사에게 기자 또한 수희찬탄하며 도량에 들자마자 뵙게 된 무여 스님, “오시느라 힘드셨지요.” 그 겸허한 자태에서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땅힘을 돋우어 환골탈태한 도량, 수행으로 환골탈태한 선사, 화합대중이 기도·수행·교화하는 도량에서 새 천년의 희망찬 출발을 자축하는데 때마침 낙조가 장관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외아들로 태어나서 부모 사랑 듬뿍 받으며 곱게만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집안에서 맴돌던 소년은 고등학교 때 하숙을 하면서 인생에 조금씩 눈뜨게 되었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고, 군대에 자원입대한 것도 인생을 알고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톨스토이가 80세에 세상 떠나기 5일 전, 평생 모은 재물과 명예를 다 버리고 가출한 사건을 보면서 삶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님 말씀 덕분에 도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걸음걸이며 말씨도 공자님 비슷하게 하려 애쓴 적도 있었다.

“군대 있을 때 조계사에 갔다가 처음으로 반야심경 강의를 들었어요. 강의는 지리했는데 나중까지 마음에 여운이 남더군요.”

진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던 청년 시절 당시 유명하다는 교수님과 목사님들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러 다녔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분들의 말씀, 들을 때는 쑥 빠져들었다가도 나중엔 별 감동이 없었는데 스님의 강의는 달랐다. 하지만 출가수행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아 성장을 위해 공직을 택했으나 상처만 입었다. 그 때 쇠약해진 심신을 추스리고, 인생의 진로를 새롭게 정하기 위해 절에 왔다가 그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평온을 느끼고 삭발 입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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