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불식 전말기(顚末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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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불식 전말기(顚末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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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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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오후불식 (午後不食)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오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불교적인 용어이다.

내가 이 말을 처음으로 듣고 그 현장을 실제로 본 것은 10여 년 전쯤이었다. 가을이 익고 있던 해인사를 찾았을 때였다. 때마침 200여 명의 행자(行者)들이 점심 공양을 마치고 경내를 안행(雁行)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황톳빛 수련복을 입고 묵언에 차수(叉手)를 한 행자들의 모습은 그것을 지켜보는 속인을 저절로 숙연하게 만들었다. 장엄하고 경건한 그 행렬만으로도 수행은 가을처럼 여물어가고 있었다. 근래에는 각박한 사회생활을 벗어나 행자가 되는, 이른바 'IMF행자'가 이따금 있다는 말도 있지만 적어도 출가는 세속의 것들을 먼지처럼 털어 낸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성스러운 행위 아닌가. 게다가 수행자로서의 몸가짐을 익히기 위해 오랜 기간 고행에 가까운 수련기간을 갖게 되는 것은 속세에서의 고통과는 차원이 다른 인내심을 요구받게 된다.

"저들에겐 아침과 점심 공양이 전부입니다. 원래 오후에는 끼니를 채우지 않는 게 부처님 재세시부터의 전통이었습니다. 오후불식이지요."

걸음을 멈춘 채 행자들의 일거일동을 숨죽여 보고 있을 때 교무 소임을 맡고 있던 스님이 나직이 설명을 해주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엄격한 규율에 따라 경·율·론을 익히고 울력과 108배, 참선과 묵언으로 임하려면 여간 시장하지 않을텐데 어떻게 저녁을 굶을 수 있을까?

"정말 저녁을 먹지 않습니까?"

그들이 출가자로서의 몸가짐을 익히고 있는 신분이라는 걸 잠깐 잊었던 내가 대뜸 물었다.

"허허! 그렇다구 완전히 굶지는 않습니다. 신도들이 우유나 떡 등을 보시할 때는 먹기도 합니다. 나도 배가 고파 어쩔 줄 몰라하는 저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적게 먹고 적게 자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 아닙니까. … 원래 계율로 보자면 오후불식을 정하고 있지만 전통과 환경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전통으로는 몸을 다스리는 약으로 삼아 섭생을 한다 하여 저녁 공양을 약석(藥石)이라고도 부릅니다."

오후불식이라는 말을 그렇게 처음으로 듣고 실제 그걸 지키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되었지만 내가 그 말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 오후불식이라는 용어는 내 일상과는 거리가 꽤 있는, 관념 속의 용어에 불과했다. 그러던 내게 그 관념의 벽을 스스로 깨뜨리게 된 계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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