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불교를 빛낸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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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불교를 빛낸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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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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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온갖 망념을 다 쉬고 차분하게 자신에로 침잠하는 사색의 계절, 잎은 져도 힘은 뿌리에 축적되어 또 하나의 연륜을 보태는 성장의 겨울철입니다. 음력 시월 보름에서 돌아오는 새해 정월 보름까지 석달간의 동안거, 산중 선원에 드신 스님들은 정진의 불꽃을 불태울 것입니다.

원각경 원각보살장에는 "청정실상에 머물어 대원각(大圓覺)으로써 가람을 삼고 안거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수행을 하든 수행의 바탕에는 이런 믿음과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비록 몸은 삼독의 불길이 치성한 거리에 처해있을지라도 믿음의 세계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맑은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가수행에서 맑은 정진을 있게 하는 것은 한낱 수행일과를 지키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크신 은혜 속에 사는 생명이고 환경이고 생활임을 알 때 우리는 감사한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받아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감사한 것입니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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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鏡虛) 스님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대로 곧다.

비뚤어진 나무는 비뚤어진 대로 곧고,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반듯하며, 불량하고 성실치 못한 사람은 그대로 착하고 성실함이 있느니라.

1849년 전주 출생. 1857년 9세에 광주 청계사에서 계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동학사 만화 스님에게 경학을 배우고 내외전을 두루 섭렵 통달, 1871년 동학사 강사, 1879년 3개월 동안 철저하게 정진하여 확철대오.

1880년 홍주 천장암, 서산 개심사, 부석사 등에서 납자 제접. 1904년 안변 석왕사 오백나한 개금불사에 증명법사로 참여했다가 자취를 감추고 만행. 1912년 함북 갑산에서 세수 64세, 법랍 55년으로 입적.

수월(水月) 스님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우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1855년 충남 홍성 출생.

1883년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887년 천수주로 확철대오.

월정사 상원암, 묘향산 비로암에서 참선 수행, 만주 지방에서 자비 보살행을 펼쳤으며 1921년 중국 왕청현 나자구에 화엄사를 짓고 8년 동안 주석하다 1928년 7월 16일 세수 74세, 법랍 45년으로 입적.

용성(龍城) 스님

마음가는 곳에 부처님 계시니 일과 이치에 불공(佛供)하라.

1864년 전북 장수 출생.

1879년 해인사에서 화월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1884년 칠불암 대은 율사의 계맥을 이음.

1911년 종로구 봉익동에 대각사 창건, 선학원을 세워 대중 포교.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 서명, 독립운동.

1921년 대각교 창립, 삼장역회 조직하여 역경사업. 화엄경, 원각경, 금강경, 기신론, 능엄경 등 30여 경 번역. 직접 오르간을 치며 찬불가 보급. 1928년 「무아(無我)」 간행, 1927년 함양에 화과원을 만들어 군자금 지원, 칠불사 , 망월사, 천성산 내원사 등에서 납자 교화. 1940년 세수 77세, 법랍 61년으로 입적. 저술로 『귀원정종』 『각해일륜』 『수심론』 『청공원일』 『어록』 등 다수가 있다.

만해(萬海) 스님

세상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를 따라 일을 하려 든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되었다. 성공과 실패보다도 그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먼저 분별하여야 한다. 그 일이 설령 실패한다고 하여도 부끄럽지 않은 옳은 일이라면 용감하게 그 길로 가라.

1879년 충청도 홍주에서 탄생.

1904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출가 득도.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 주도. 최고형을 치름.

1926년 『님의 침묵』 시집 발행.

1944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에서 열반.

만공(滿空) 스님

내가 이 산중에 와서 납자(衲子)를 가르치고 있는 지 40여 년인데, 나를 찾는 이가 적지 않았지만, 찾아와서는 다만 내가 사는 집인 이 육체의 모양만 보고 갔을 뿐이요, 정말 나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를 못 보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못 보는 것이 곧 자기를 못 본 것이다.

1871년 전북 태인 출생.

1884년 서산 천장사에서 경허 스님을 계사로 출가 득도하고, 10여 년간 선을 배웠다.

1901년 통도사 백운암에서 새벽 종소리를 듣고 활연대오. 수덕사, 정혜사, 견성암, 마하연에서 선풍을 떨쳤으며 마곡사 주지 역임.

1946년 덕숭산 전월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62년으로 입적.

석전(石顚) 스님

들쑥날쑥하는 뜬 구름 같은 생명을 잘 구원함이 대장부의 마땅한 대업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고 만일 초급적 배움에 편승하여 그 뜻이 밝지 아니하고 고매하지 아니하면 비열한 자기 생명에 마음의 눈이 암담하여 거친 골짜기에 작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1870년 전북 완주 출생.

1888년 전주 위봉사에서 금산 화상의 법제자로 출가 득도.

1892년 순천 선암사의 경운 스님에게서 대교 수학. 석왕사, 신계사, 건봉사에서 안거.

1912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전신) 교장,

1926년 개운사 대원암에 불교 강원 설립, 후학 지도.

1929년 조선불교 교정.1931년 불교 전문학교 교장.

1933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의 초대 교정(宗正) 역임.

1948년 정읍 내장사에서 세수 79세, 법랍 61년으로 열반.

한암(漢巖) 스님

도(道)가 본래 천진하면 방소(方所)가 없어서 실로 가히 배울 게 없다. 만일 도를 배운다는 생각이 있다면 문득 도를 미(迷)함이 되나니, 다만 그 사람의 한 생각 진실됨에 있을 뿐이다. 또한 누가 도를 모르리오마는, 알고도 실천을 하지 않으므로 도에서 스스로 멀어지게 되느니라.

1876년 강원도 화천 출생.

1897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 화상을 은사로 출가 득도.

1899년 경허 스님으로부터 인가.

1910년 평북 맹산군 우두암에서 확철대오. 건봉사(1921년), 봉은사(1925년) 조실, 조계종 초대 종정(1936년) 역임. 보조법어 편집,

1951년 상원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55년으로 입적.

만암(曼庵) 스님

탐업(貪業)은 바로 일만 장애문의 근원이 됨을 철저히 체득할진저. 그리고 끝으로 번뇌가 바로 보리의 행임을 통달하지 못하면 또한 한 방망이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하, 이것이 무엇이냐?

1876년 전북 고창 출생.

1889년 장성 백양사에서 도진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29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전신) 교장 취임.

1946년 호남 고불총림(한국최초의 총림) 결성, 선교겸수의 종합도량 설립,

1947년 종립 정광고등학교 설립 교장 취임.

1948년 조선불교 교정에 취임.

1954년 조계종 종정 취임,

1956년 세수 81세, 법랍 71년으로 백양사에서 입적.

석우(石友) 스님

망상(妄想)을 말라.

1875년 경남 의령 출생. 설총의 45세손.

1912년 장안사에서 연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 유점사의 차선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이후 사제인 상월 스님과 20여 년간 영원암에서 수행.

1932년 지리산 칠불사로 옮겨 수도.

1955년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추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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