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공모 입상작] 어떤 부업의 무한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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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공모 입상작] 어떤 부업의 무한공덕
  • 정찬연
  • 승인 2007.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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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행수기 공모 입상작 ▣

‘나무아미타불 10만 8천 번 사불(寫佛)’

그 풀리지 않는 화두를 동산불교대학에서 받은 지 2년, 한봇짐이나 되는 분량과 10만 8천이라는 그 엄청난 숫자에 압도되어 처음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포기한 채 졸업을 코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도반들은 거의 마무리 카운트다운 단계에 도달한 것 같았고 그런 도반들 보기가 민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내에게 SOS를 보냈습니다. 공짜로는 어림도 없고 한 번 사불에 10원씩은 줘야 해보겠노라는 아내의 반응에 즉석에서 계약을 하고 다음날부터 사불에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시작은 잘하면 체면치레 정도의 분량은 사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예상은 다음날부터 빗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날 아내는 1,000번을 넘게 사불하였습니다. 첫 날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넘겼지만 다음 날도 1,000번을 넘어섰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이런 추세로 지불하다가는 나의 비자금으로는 한 달 견디기도 힘들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적당히 하라고 말릴 처지는 더욱 아니었습니다. 방법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아내가 써야 할 분량을 줄이는 길뿐이었습니다.

첫 날, 둘째 날 부진했던 나는 셋째 날 1,500번을 사불하였습니다. 손가락 사이에 물집이 생기어 고통스러웠지만 알 수 없는 오기와 신심이 생겼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아내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직장의 근무시간과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찾았습니다. 손가락 사이엔 어느새 굳은 살이 박히고 몇백 번 사불하고 나면 시간의 흐름을 몇십 초 오차 내로 정확하게 집어 낼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내 역시 조금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4주가 지난 뒤에는 열심히 하면 10만 8천 번 사불도 가능하리라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비자금은 이미 바닥이 났고 내 용돈까지 투자해도 모자라 급기야 후불로 하기로 재약정하니 아내에게 진 빚은 점점 늘어갔습니다. 그런 아내가 밉살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꿈 속에서조차 나무아미타불 사불한 원고를 잃어버려 밤새 찾느라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엔가 쫓기듯 그렇게 한 달 보름 만에 10만 8천 번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나의 모든 비자금을 털어가며 이 일을 부탁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까운 친족 중 불교신자는 나 하나뿐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나는 정말 금생에는 불교와의 인연의 끈이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교회에서 결혼하셨고 신앙생활을 하셨으니 나의 모태 신앙은 기독교입니다. 셋째 작은아버지, 둘째 작은아버지의 아들인 사촌동생, 처가 쪽으로 큰 동서가 목사입니다. 둘째 작은아버지께서는 장로이시고, 형수도 목회는 않고 계시지만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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