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화두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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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화두를 들다
  • 관리자
  • 승인 2007.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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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어서 오십시오. 어디까지 모실까요?”

간신히 택시를 잡아 탄 반야행이 땀을 닦고 있을 때 턱수염이 성성한 기사가 물었다.

“관음사까지 가는데 십 분이면 되겠죠?”

“글쎄요. 막히지 않으면 그 정도 걸릴 겁니다.”

기사가 미터기를 올리고 차를 출발시킨 뒤에야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며 손수건을 핸드백 속에 집어넣었다. 아직 수련회의 입제식이 시작되려면 20분 정도 남아있었다. 접수를 하고 수련복을 갈아입는 시간은 그럭저럭 남은 셈이었다. 지하철을 탈 때부터 시간이 빠듯해 안국역에서 택시를 이용하려 했지만 몇 대를 그냥 놓쳤을 때의 다급했던 마음이 이젠 진정이 되는 듯 싶었다.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절에 무슨 법회라도 있나요?” 기사는 삼청동길로 접어들면서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법회는 아니고 수련회가 있거든요. 주말 수련회요.”

“그렇군요. 그런 게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두 가끔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만, 이거 사는 게 뭔지…. “

그녀는 룸미러에 매달린 염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고픈 이유로 오래 전부터 수련회에 참석할 것을 다짐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 일상의 번잡스러움은 그녀에게 좀처럼 시간을 주지 않았다. 사실은 그 번잡스러움을 떨치려는 것 자체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일 터였다.

“아저씨도 절에 다니시는가 봐요? 염주도 달려 있구….”

“하핫! 초파일 불잡니다. 절엔 일년에 한 번 가는 정도인데 마누라가 얼마나 정성인지 이걸 달고 다닙니다. 그 덕택인지 아직까지 사소한 교통사고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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