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맑은 아기부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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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맑은 아기부처들에게
  • 관리자
  • 승인 2007.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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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지난 6월 마지막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식탁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그 때 아내는 오늘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났던 날이라며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내는 평소에도 삼풍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의 가슴아픈 얘기를 곧잘 하곤 했다. 나는 ‘벌써 4년인가’하며 웬지 모를 궁금증에 TV를 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시뻘건 불 속에 무너져내리는 게 또 하나 있었다. 우리의 하늘 어디엔가 비구름처럼 떠다니던 만성적이고 비이성적인 부유불안(free floating anxiety)이 소나기되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그 불 속에는 열아홉의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수련장이 콘테이너 조립건물이라는 둥,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얘기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나는 지금까지 가공할 상식의 병에 걸려 살고 있었나 보다. 법철학자들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하는데, 세상에는 어째서 최소한의 도덕도 상식도 없단 말인가.

이는 그런 시설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보라고 도장을 찍어 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윤추구 동기에 기꺼이 협조를 해 주는 자칭 교육사업가들이 함께 손을 잡고 차려 놓은 제삿상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세 가지가 결합되어 폭풍으로 이어진 나비효과이다. 그 어느 하나만 아니었더라도 무지막지한 카오스는 없었을 것이다.

노란 부리의 병아리들이 불 속에서 애타게 엄마를 찾다가 웅크린 채 본래의 사대(四大)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아이들이, 인생의 뜨거운 맛, 쓴 맛을 보다 못해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말라 비틀어지고, 알코올에 젖어 말초신경이 무뎌질 대로 무뎌지고, 온갖 탐욕의 불길에 수십 년간 담금질이라도 된 강철세대란 말인가. 생선가시 발라 먹이며 미풍에 날아갈까 가랑비에 젖을까 하며, 삼백 예순 날 놀란 가슴으로 키워온 새끼들이 아닌가. 촛농 한 방울에도 생떼잡이할 새끼들에게 화형이라니, 무슨 종교재판이라도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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