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생명은 자비 보살행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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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생명은 자비 보살행에 있습니다.”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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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 탐방/경북 상주 남장사 성웅스님

“남장사 가십니까? 아주 좋은 고찰입니다. 우리 상주의 자랑이지요. 그곳 주지스님은 또 얼마나 훌륭하신지 모릅니다. 상주냉림사회복지관도 남장사에서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주지스님이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하십니다.”라는 택시 운전기사의 싱글벙글한 미소와 마치 자신의 친인척 자랑하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상주 고속터미널에서 20여 분 남짓 되었을까, 사람 좋은 운전기사 덕에 찰나간에 남장사에 도착했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는 청솔 숲속에 자리한 남장사에는 고즈넉한 적막이 흘렀다. 청정한 가람의 향기, 그러면서도 ‘전법도량’이라는 현판이 무색하지 않은 포교도량으로서의 법열이 넘쳐 흐르는 분위기, 성웅 스님과 첫 대면을 하면서 그 택시기사의 칭송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기자에게 맞절을 하시는 스님의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자비로운 위의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스님, 먼저 사죄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상주에 내려 오면서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수행과 포교에 열심이시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동안 가져 왔던 주지 소임에 대한, ‘수행보다는 대중들 뒤치닥거리하고 포교하고 살림살이하느라 바빠서 본말이 전도되기 쉬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스님께서는 강원 졸업 후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주지 소임을 맡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을 일러 주지스님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칭송이 자자합니다. 이 시대에 주지 소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둥근 돌은 둥근 돌대로 쓸 데가 있고, 모난 돌은 모난 돌대로 쓸 데가 있듯이 선승, 학승, 율사, 포교사, 소임자 등 갖가지 분야를 두루 평등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모두를 다 스승이요, 선지식으로 모시고 탁마하고 살면 수행 아닌 게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선이 제일이다, 염불이 제일이다, 소임을 맡으면 수행이 뒤처진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과 염불이 둘이 아니고 수행과 포교가 둘이 아닙니다. 모든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고 전공을 통한 특기를 살려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모두가 교단의 주체로서 화합승가를 이룰 때 나라에 기여하고 나아가 불국토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주지 소임은 최일선에서 수행하며 포교하는, 그야말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중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사찰의 주지는 대중교화 현장의 구도자로서 이 시대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의 병고를 치유해야 할 직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지 소임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수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수행의 힘 없이는 제 아무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해도 대중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또한 사찰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한 운영을 해야 합니다. 역대로 수행을 통한 지혜와 복덕을 갖춘 출중한 대덕스님들이 대중을 잘 통솔하고 원융한 살림살이를 통해 수행가풍을 진작시키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 왔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런 선대 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일단 수행력의 증진에 힘쓰는 한편 포교와 아울러 지역사회의 제반 문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 애쓰고는 있는데 항상 부족한 생각이 듭니다.”

부족하시다니요? 항상 초발심으로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남장사를 상주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로 변신시키고, 상주사암연합회는 어느 지역보다 화합이 잘 되고, 청소년불자연합인 파라미타 상주지회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발족시키는 등 유교적 전통이 강한 이 지역이 전국적으로 신심이 깊은 곳으로 손꼽히게 된 데는 상주에서 20년 넘게 주지소임을 맡아 수행하고 포교한 스님의 덕택이라고 합니다.

“당치 않습니다. 사부대중 모두의 힘이지 그게 어디 제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다만 처음 불문에 들어와서 굳게 다짐한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삼계 대도사(욕계·색계·무색계의 모든 중생을 인도하는 큰스승)이시고 사생자부(태생·난생·습생·화생 등 모든 生類의 자애로운 아버지)이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조금이라도 부처님께 허물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세상에는 네 가지 중한 은혜(나라, 부모, 부처님, 단월의 은혜)가 있는데, 특히 단월(施主者)의 은혜를 지중하게 알고 시주한테 빚을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 두 가지만 철저하게 지키더라도 중노릇의 절반은 된 것이라는 확신하에 항상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살다 보니 다행히 욕은 먹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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