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포들의 근면성과 인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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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포들의 근면성과 인욕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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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일제의 암흑기 고국을 떠나 살길 막막한 연해주 지방에 벼농사를 처음으로 이식하여 우리 동포들이 간구한 살림살이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구소련의 스탈린은 선량한 우리 동포들을 일본첩자로 몰아 한겨울, 그것도 한밤중에 시베리아 횡단 화물열차에 실어 낯선 중앙아시아 지방으로 남김없이 강제 이주시켰다.

갑자기 일어난 민족의 강제 이동이었기에 이 와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0에 5할이었다고 하니 그 참상이 어떠했는지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그러나 우리 동포들은 질긴 풀뿌리같이 강했기 때문에 그해 겨울을, 두더쥐마냥 건조한 늪지대의 땅을 파고서 겨울을 났다고 한다.

의료대책이 있을 리 없는 그곳에 전염병까지 돌아 그 철도 이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반수 이상 죽음으로 쓸려 나갔다.

그 후 우리 동포들은 모진 고생을 참아가면서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간직한 낟알로 모판을 만들고 우리식 농사를 지어 결국 성공했다. 지금의 저냉현상 같은 한랭하고 건조한 중앙아시아의 열악한 기후 조건 속에서도 농작물은 결실을 맺어 식량을 자족하게 되었고 나머지는 중앙아시아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끊임없는 개척과 참음의 고통을 이겨 마침내 그들은 해내었던 것이다. 차차 우리 동포들은 우리만의 군락을 이루었고 시장에 진출해 점포도 마련하여 식당이며 장사도 할 수 있었다.

오늘날 동포들이 첫 이주할 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돌아가셨어도 우리 동포 2세대들이 버젓한 가옥과 농장을 갖고 낙농, 목축업까지 하면서 그 나라에 적응하는 한편 우리의 언어와 풍습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중앙아시아 우리 동포들의 실상을 편집하여 보도한 고려신문, TV방송들의 다큐멘터리 한국편의 내용을 지켜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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