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고구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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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고구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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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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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

   일본 불교 개척자의 한 분 혜편(惠便)

  혜편(惠便)스님은 틀림없는 고구려 스님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어느 지방에서 성장하고, 언제 출가하여 주로 어느 절에서 공부하였는지에 대한 신상문제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당시 불교문화의 미개지(未開地)였던 일본에 고구려의 불교를 전한 인물로만 전해져 있을 뿐이다.

  일본에 불교를 제일 먼저 전하기는 물론 백제에서이다. 백제 26대 성왕(聖王) 30년(552,일설로는 538)에 비로소 일본에 불교를 전하였고, 이어서 554년에는 담혜(曇慧)등의 아홉 스님을 다시 일본에 보내어 이미 그곳에 가 있던 도심(道深)등 일곱 스님과 교대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음의 위덕왕(威德王)24년(577)에는 백제에서 경론(經論)과 율사(律師)·선사(禪師)·비구니(比丘尼)·주금사(呪噤師)·조불공(造佛工)·조사공(造寺工)을 각각 1인씩(합해서 6명)을 일본에 보내는 등 전혀 불교를 모르는 그들에게 불교 및 그 문화를 전해 주었다.

  그러나 실권 면에서 매우 약했던 일본 국왕(天皇)을 불교를 배척하는 실권세력 편을 지지하여 모처럼 백제에서 보낸 불교를 거부하게 되었다.

  애초에 백제에서 불교를 보낸 것도 그들이 미개성(未開性)을 탈피하고 문화 롭게 되기 위하여 그네들이 백제에 요청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는 천황이라는 국왕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큰 실권세력이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불교 필요론을 주장하여 불교를 받아들인 쪽이 결국 천황과 멀어지면서 이미 전해져 있었던 불교문물을 외면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는 불교가 잘 전파되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백제 위덕왕 31년(584)에 일본의 사신이 백제로부터 미륵석상(彌勒石像)과 부처님상(佛像)을 각각 한 분씩 모시고 갔다.

  그때 일본의 실권자인 소아마자(大臣 蘇我馬子)가 그 불상 두 분(二軀)을 인수 받아서 자기의 저택 옆에 정사(精舍, 나중에 石川寺라 했음)를 세우고 거기에 모셨다.

  처음부터 불교를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여 백제로부터 스님과 불교문물을 받아들였던 주도세력이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불교를 좋아하였던 소아마자 대신을 조촐한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으나, 상주하면서 도량(道場)을 지킬 스님이 없었다.

  오래 전에 백제로부터 건너갔던 스님들은 일본 조정의 변덕스러운 불교 거부바람으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귀국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아마자는 일본 안에 스님(백제 등 외국에서 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전에 건너왔던 스님들이 행여 일본의 어느 구석엔가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백제에 요청해서 다시 스님을 모셔 오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빨리 국내에 있을 스님을 찾아내어 새로 지은 절을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방에 사람을 보내어 스님을 찾아오게 하였다.

  거기에 찾아내어진 스님이 바로 고구려의 혜편스님이었다. 그 때 혜편스님은 승려가 아닌 속인의 행색으로 일본의 어느 마을 민간인들 속에 묻혀 있었다. 그렇다고 스님의 신분을 버리고 환속(還俗)해서 완전한 속인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일본의 어느 학자는 惠便이 환속해서 法明이라는 비구니와 부부와 되어 살았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史料를 잘못보고 연구를 깊이 못한 소치의 큰 착오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당시 일본에는 불교의 전파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혜편스님도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려고 건너가기는 하였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때의 일본 실정 때문에 승려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절도 없고 집도 없는 처지에 당장 끼니를 보시 받을 수 또한 없었다.

  그가 취할 수 있는 길은 속복으로 바꾸어 입고 민간인 속에 동사섭(同事攝)하면서 불법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릴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아제 그 때를 만났기 때문에 속복을 벗어던지고 다시 스님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혜편스님이 석천정사(石川精舍)로 가서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펼치게 되니, 소아마자 대신은 매우 기뻐하고 혜편스님을 공경하여 스승으로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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