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마음을 비끄러매고 염념히 부처님을 생각하다 보면 내 몸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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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마음을 비끄러매고 염념히 부처님을 생각하다 보면 내 몸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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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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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 탐방, 팔공산 동화사 비로암 범룡(梵龍)스님

“눈이 녹았군. 햇살이 무섭군.”

무심하게 터뜨린 스님의 텅빈 말씀 한 마디. 해맑은 스님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했다. 햇살처럼 수행하면 눈이 녹듯 번뇌망상이 녹고 본래 있던 대지가 드러나듯 우리 마음 속에 본래 갖춰진 불성이 드러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것으로 족한데, 그만 석굴암 부처님과 인도지도, 세계지도, 우리 나라 지도가 스님의 방 벽면을 채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갖가지 상념을 일으키다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스님, 벽면의 지도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뜻이라도 있으신지요.

“무슨 별다른 뜻이 있겠어요. 그저 보려고 붙여 놓았지요. 실은 내 어릴 적 꿈이 세계일주였어요. ‘너희 나라 금강산이 그리 좋다는데 어떤 산인가?’ 라고 물을 것을 생각하니 내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대답할 수가 없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고향 가까이 있는 묘향산 놔두고 금강산 구경을 갔습니다.

금강산 유점사는 참선방, 강원, 염불당이 두루 갖춰 있는 명찰이었는데, 그 분위기가 좋아 눌러 있다가 불교잡지를 보고 발심 출가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종무소 책장에 모셔놓은 것을 들여다보기만 했지 우리 같은 사람은 불경은 만져보지도 못했어요. 부처님 말씀에 대한 갈증을 잡지가 채워주었는데,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뜨거운 것은 스스로가 아느니라(如人飮水에 冷暖自知)’는 문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불교를 알려면 불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허 스님을 은사로 삭발 입산했지요.

불교에 입문하고보니, 세계여행을 하겠다던 생각도 슬그머니 없어지더군요. 출가하기 전에는 이 세계만 세계인 줄 알았는데 불교에서는 시방세계, 우주법계를 논하고 있으니 도를 깨치고 성불하면 우주법계를 다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정작 출가하게 된 데는 부친의 영향이 컸습니다. 부친께선 본래 유학자이셨고 술도 잘 드셨지요. 어느날 갑자기 술 끊기 위해서 예수를 믿겠다고 하셨지만,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친이 전생에 승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늘 글을 읽는 것도 전생에 새벽예불하는 습관이 있어서인 것 같고, 목사보다는 스님들과 더 친하게 어울렸지요. 스님네가 전생 친구 같으니까 그렇게 좋아했던 것입니다.

내가 보통학교 3학년 때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부친께서 탁발승에게 ‘불교에는 사난득(四難得)이 있다는데 그게 뭡니까?’

라고 묻는데 탁발승이 대답을 안 하자 부친께서 ‘듣기에 인생난득(人生難得), 장부난득(丈夫難得), 출가난득(出家難得), 불법난득(佛法難得)이라고 합니다.’ 라고 자문자답하던 그 말씀이 어린 가슴에 꽉 들어찼고, 그게 씨앗이 된 셈이지요.”

유점사 강원을 나오셨는데 그 당시 강원 생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겨울날 한밤중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도둑밥 해먹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요즘엔 물질이 풍부해서 공부를 않는데 그 때는 먹을 게 부족해서 공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때라 절집 형편도 좋지 않아서 눈꼽만큼한 서홉밥을 먹어가며 공부했는데 한창 젊은 나이에 어디 그것 갖고 양이 차나요. 윗분 스님네들 주무실 때 학인들끼리 심지를 뽑아 밤참을 해먹곤 했지요. 심지를 뽑으면 제 아무리 법랍이 높아도 공양간에 가서 밥을 해야 했습니다. 밤중에 양동이 하나씩 들고 마을에서 김치 얻어와서 먹던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강원에서 재미있는 일도 많고 좋기도 좋았는데, 가만히 손꼽아 헤아려보니 1년 중에 3분자 1은 노는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딴 궁리를 하던 차에 오대산 상원사에 도 닦는 승려수련소를 설치한다는 공문이 왔기에 지원해서 상원사로 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도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한암 스님 회상으로 가려 했었는데, 본사에서 학비를 대주며 보내주었으니 나로서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수련소 수료식 날 본사에서 스님네들이 오셔서 ‘한암 스님같이 되라고 보냈는데 어렵수다’ 며 한마디씩 하더군요. 나는 수련소를 마친 뒤 여기저기 선방으로만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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