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見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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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見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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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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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그늘/운허(耘虛) 스님

천성산 내원사(內院寺) 골짜기에 있는 성불암(成佛庵)에 있는데 통도사에 계시는 운허(耘虛) 스님으로부터 아무 날 아침 일찍 통도사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그 날이 되어 새벽 예불을 마친 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길을 내려갔다.

그 무렵, 나는 하루 한 끼만을 먹었다. 우리 나라 불가(佛家)에서는 하루 한 끼만을 먹는 것을 '일종' 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풍습은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온 수행의 한 방식이기도 했다. 인도와 같은 더운 지방에서는 하루 세 끼를 먹는 것도 고역일 터이지만 세 끼를 먹기 위해서 세 차례의 탁발을 해야 하는 것은 더 더욱 고역일 것이고 수행할 시간을 그만큼 빼앗게 될 것이므로 부처님께서 일종을 정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중국과 우리 나라에 전해져서 선가(禪家)에서는 사시(巳時, 오전9시~11시)에 한 끼만을 먹는 것이 수행의 한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신도의 경우는 정해진 날에 일종을 하면 여러 겁 동안에 지은 업을 소멸하고 내생에는 그 과보로 부자가 되어 수천 석의 식량을 비축하게 된다고 해서 일종을 권했다. 또 재일(齋日)에는 반드시 일종을 지키도록 했다. 이것은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실천하게 하는 것으로서 과소비가 만연하고 소비가 미덕이 되어 있는 오늘날 되새겨야 할 교훈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 때, 내가 일종을 한 것은 수행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내생의 복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식량이 넉넉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하루 한 끼밖에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넉넉하지 못한 식량이나마 내가 가진 것은 내가 마련한 것이 아니고 내 앞서 성불암 암주(庵主)인 법연(法演) 스님이 두고 간 것이었다. 법연 스님이 두고 간 식량이 동이 나면 그 다음의 식량은 기약이 없었다. 때문에 있는 식량을 늘려 먹느라 일종을 하는 나였으므로 새벽예불을 마친 뒤에 밥 지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예불을 마치자 곧 산길을 내려 온 것이었다.

통도사에 도착해서 운허 스님을 뵈니 스님 말씀이 석암(昔岩) 스님이 오실 것이니 함께 종현(宗現) 스님 과수원에 가서 햇강냉이를 먹자 하셨다. 좀 엉뚱했다.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으나 허기진 배를 달래며 새벽 산길 15리를 걷고 첫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온 목적이 햇강냉이를 먹는 일이라 하니 저윽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속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그 때 운허 스님은 불교사전을 편찬하는 한편 경전을 번역하는 일도 함께 하고 계셨다. 그 무렵 운허 스님이 번역한 경은 주로 자운(慈雲)스님이 화주(化主)로 출판되었다. 이때부터 불교계에서는 역경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는데 운허 스님과 자운 스님이 중심이었다. 두 스님은 지속적으로 역경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재원(財源)의 확보가 긴요하다고 의견을 같이 하고 있었다. 두 스님이 역경사업의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궁리하고 있을 때 과수원을 경영해서 그 소득으로 역경사업을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종현 스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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