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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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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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목소리

1997년 9월 24일 오전 9시 20분 우리 일행은 높이 날아 망망한 서해를 건너가고 있었다. 날씨는 흐린 편이었으나 구름 사이로 보이는 몇 척의 배가 물살을 가르고….

세수 24세, 신라 719년 서해안 한강 어구 혈구진 당성포(현재의 남양만, 一說)에서 삽살개(神犬)를 유일한 도반으로 삼아 수개월에 걸친 항해 길을 떠나는 김교각 스님.

상해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오전 10시 30분 우리 일행을 태운 비행기(동방 항공)는 안휘성 황산 공항에 도착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대지, 간간이 보이는 물소의 느릿느릿한 발걸음과 유유히 노니는 냇가의 오리떼를 지나 우리에겐 친숙하게 느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에 접어든다.

약 3시간을 더 달렸다. 식곤증으로 졸린 눈꺼풀을 들었다 놓았다 할 쯤, '야! 구화산이다.' 일행들이 외치는 소리에 화들짝 눈을 떴다. 순간 '구화산 불국 경지 능원'이란 간판이 내 머리를 지나고 있었다. 약 10분간 민가 사이로 달렸을 때다. 마치 병풍에 눈을 바짝 대고 산수화를 보는 착각에 빠진다. 교각 스님이 계셨다기에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같은 핏줄을 나눈 데서 오는 지나친 정 탓일까?

'옛날의 구강(九江)에서 구화봉을 멀리 바라보니 은하수 푸른 물에 아홉 송이의 부용(芙蓉)이 빼어났다' -이백-

둘러보는 곳마다 기암괴석이요, 끝없이 이어지는 골짜기, 그 사이사이에 흐르는 시냇물과 시원하게 내리치는 폭포수들이 중국의 4대 불교명산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산중턱에 도착한 후 우리 일행은 곧장 구화산의 개산조사(開山祖寺)인 화성사(化城寺)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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