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과 보현행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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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과 보현행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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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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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불교신앙

  직장생활과 불도수행

 직장은 경제활동의 현장이다. 말하자면 속된 세상 곧 속세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적용되는 생활원리는 경제원칙일 수 밖에 없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거둔다」는 원리이다.

 뿐만 아니라 직장은 무서운 경쟁의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대외활동면에서 보면, 시장쟁탈의 무서운 경쟁을 생각할 수 있고, 대내활동의 면에서 보면 우승열패의 가열한 경쟁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쟁에 이기기 위하여 직장인들은 투쟁적 생활을 일상화(日常化)하여야 한다. 그것은 가위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속세에서 싸우며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성스럽기 한량없는 불도수행(佛道修行)이 무슨 상관있는 일이겠는가? 그래서 직장인과 수행은 아무런 상관관계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가 과연 옳은 것일까? 참으로 불도수행은 수행 전문가(修行專門家)의 소관사항이고, 직장인은 그러한 수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불교라고 한다면, 불교는 그리 대단한 종교일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교는 이원론(二元論)을 근거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세계(相對世界) 내지는 대립세계(對立世界)의 논리 아래 존재하는 종교이므로 소위 절대(絶對)라는 무상가치(無上價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이러한 대립세계적 가치관을 내세우는 종교기 없는 것은 아니다.

 하늘 세계와 인간 세계를 대립시키고 창조주와 피조물을 대립시키고, 교회와 속세를 대립시키며, 신자와 비신자를 대립시키는 서양 종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종교는 현대 지성인에게 아무런 매력도 느끼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와 같은 이원론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것이다. 소위 불이(不二)라는 말이 있다.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교는 처음부터 어떤 의미로든 대립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성스럽다는 「부처」와 속되다는 「중생」이 둘일 수 없고,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둘일 수 없고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 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둘, 즉 대립을 부정하고 본래부터의 하나인 법성(法性)만을 인정하는 까닭에 불교는 우수한 종교로 평가받는 것이다. 불교야 말로 절대종교(絶對宗敎)인 것이다. 이래서 현대 지성인은 불교에서 인류 구원의 영원한 광명을 찿고자 하는 것이다.

 사리가 이와 같은데 어떻게 직장과 수행이 둘일 수 있으며, 직장인과 전문 수행인이 둘일 수 있으며, 성(聖)과 속(俗)이 둘일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둘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장이 곧 수행 도장이며, 직장인이 곧 수행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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