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한번씩 나에게 호의와 관심을 가진 불자님들로부터 전화를 시작해서 아주 반갑게 끝난다. 그것이 대로는 나에게 힘이 되기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대화가 어색해지고 잠시나마 나 자신의 미성숙함을 탓하게 되는 여운을 남기는 전화도 가끔 있다. 일전에 멀리 LA에서 한 보살님으로부터 받은 전화가 그렇다.
보살님은 전화를 받은 사람이 나인지를 확인하고 나서 간단하게 자신이 서운사 전화번호와 나를 알게된 경위를 설명하고 이어서 아주 호의와 관심을 가진 목소리로 나에게 몇가지 질 문을 했다. 보살님의 첫질문은 이곳 서운사가 한국 전통양식의 절인지 아니면 미국에서 흔 히 보는 보통 양옥 형태의 절인가였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냥 대답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신도가 몇 명이며 보스턴 시내에서 가까운지를 물었다. 두 번째 질문부터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아주 순간적으로 반가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언짢은 기 분이 되고 말았다. 그 보살님이 전혀 나쁜 의도를 가지고 물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서도 내 기분은 반사적으로 나빠졌던 것이다.
때마침 찾아왔던 한 보살님이 막떠나가려던 순간에 전화를 받았었기 때문에 잠시 뒤에 꼭 다시 하라고 말하고 배웅을 마쳤다. 그리고 혹시나 전화를 기다렸지만 역시 전화를 다시 받 지는 못했다.
그 보살님은 분명 그냥 생각 없이 물었던 질문이었는데 대답 대신 나를 심문하느냐고 되물 었던 나의 예상 못한 반응에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얼떨결에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너무나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전화를 난데없이 심문이라는 아 주 부정적으로 강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일종의 상처를 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심문이라는 말대신에 인터뷰라는 보다 적절한 말을 사용했더라면 굳이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되새기거나 미안한 마음이 덜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서운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절에 새 스님이 왔다는 소문이 조금씩 나면서 그 동안 스님이 자주 바뀌고 내가 오기 바로 전에는 절이 스님도 신도도 없이 6개월 이나 방치되었던 관계로 절을 떠난 몇몇 불자님들이 호기심에 가끔 방문했다. 그리고 그들 은 나름대로의 소감을 서슴없이 표현했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하는 소감 하나가 있다. " 여자스님이라서 역시 절이 전보다 굉장히 깨끗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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