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철학자의 사색] 어머니의 마지막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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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철학자의 사색] 어머니의 마지막 가르침
  • 김용규
  • 승인 2020.1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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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지금 죽음의 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다. 입춘 무렵부터 식사를 제대로 못 하더니, 하지 무렵 허리를 굽히다가 고관절이 부러지고 말았다. 고관절 골절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평소 안고 살던 다른 병 때문에 어렵게 수술을 받았다. 입원한 김에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내과 진료를 받았다. 

 

| 고칠 수 없는 병

폐암 말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암세포가 다른 장기와 뇌까지 퍼져 있다고 말했다. 폐암 말기의 여명을 통상 6개월로 보지만, 어머니 상태는 그 절반을 가늠하게 한다고 했다. 자식들은 슬픔 속에서 몇 날의 탐색과 논의 끝에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대에는 입원한 사람도, 그 가족들도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병원은 오가는 시간과 오갈 수 있는 사람의 수와 건강 상태를 제한했다. 자식들의 의견 불일치로 어머니에게 병명을 알리지는 못했다. 당신은 다만 고칠 수 없는 병을 만났다고만 알고 있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경기도 양평에서 약수를 떠다가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어머니는 그 물을 좋아했다. 마시면 숨쉬기 쉬워지고 마음도 편안하다고. 다른 자식들도 열심히 어머니를 찾았다. 큰누나는 열심히 기도했다. 둘째 누나는 매일 죽을 쑤고 채소와 과일을 갈아다 바치며 보살피지만 야속하게도 당신은 그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토할 때마다 어머니는 망연해했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등을 쓸어주고 이따금 그 작은 머리도 주물렀다. 근육이 거의 남지 않아 뼈만 도드라진 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어려웠다. 이따금 방비 없이 토하실 때는 얼른 손 내밀어 어머니의 토사물을 받기도 했다. 어머니는 말씀했다. “민망하고 미안해서 어쩌냐?”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그런 생각 조금도 하지 마세요. 어머니. 우리 자식들 커서 스스로 살기까지 어머니가 받아내신 똥오줌과 토사물이 얼마고, 약도 없던 시절 열 끓는 자식 곁을 지키느라 하얗게 지새우신 밤이 얼만데 그러세요.”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셨다. “그래도….” 

어머니는 8인실의 한 병상에 입원했는데 환자 대부분은 어머니 연세 전후였다. 저마다 온 일생이 주어진 삶을 감당하고 아픈 몸이 되어 병원에 당도한, 한때 꽃다운 소녀였을 어머니를 닮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자주 숙연해졌다. 하늘 푸른 어느 주말, 어머니가 옆 병상의 또래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딸도 왔는데, 좀 웃어 봐유. 왜 그렇게 맨날 근엄한 표정으로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있어유? 내가 노래 한 곡 할 테니 다 듣고 답가 한 곡 해봐유.”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진정 어린 노래를 불렀다. 평소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다. 그 할머니는 아주 옅은 미소를 지을 듯 말 듯 하더니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딴 곳을 응시했다. 

 

| 노래하며 사는 인생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씀했다. “나는 쟤들 아버지 먼저 가시고 쟤들도 없는 덩그런 집에서 자주 노래했어유. 방 닦다가도 부르고 먼지 털다가도 부르고, 텃밭에 풀 뽑다가도 부르며 살았어유. 고달프고 쓸쓸하고 가끔 아픈 게 인생이라지만 노래하며 살지 않는 인생이 어디 인생이것시유, 삭막해서 어떻게 살 것시유?” 감탄했다. ‘어머니는 아픔 속에서도 노래를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셨구나. 비통한 것이 삶이라 해도 삶은 노래여야 한다고 웅변하고 계시는구나.’

의사는 기일을 정해놓고 퇴원을 종용했다. 어머니의 상태와 무관하게 고관절 치료는 끝났고 항암을 하지 않는 한, 더는 입원의 명분이 없다고 했다. 법이 그렇다고 했다. 어머니는 두 달 남짓의 입원을 마쳤다. 우리는 의료용 침대와 변기 등을 마련하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어머니는 50년 가까이 쓸고 닦고 풀을 뽑으며 그 남향집을 가꿨다. 자식 모르게 더러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고 이제 볕이 가득 드는 방, 의료용 침대에 누워 마당을 본다. 뒷마당의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담장 넘어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와 익숙한 마을 사람들의 걸음 소리를 듣는다. 창밖으로 평생 보아온 초등학교의 벚나무 잎사귀가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이따금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아픔과 함께 잠들고 새소리와 함께 눈뜬다.

그러다가 문득 운전 중이던 아들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막내아들! 언제 오나? 보고 싶구나. 낮에 형 왔을 때 내가 다 얘기했다. 나는 이제 여한이 없다고. 여든 훌쩍 넘긴 목숨이니 충분하고 자식들 씩씩하게 살고 있으니 더 바랄 것도 없다고. 꼭 들어줘야 하는 마지막 바람 하나 있는데, 엄마 죽고 없는 날에도 너희들 모두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번에 뵈면 휠체어 타고 마을 한 바퀴 돌아요. 어머니! 가을 햇볕도 마음껏 쬐시고 우리 논에 익어가는 벼도 보시고 오가는 동네 사람들도 만나시고….” “그러자, 그러면 참 좋겠구나!” 

전화를 끊고 차를 세웠다. 나는 한참 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어머니 당신의 노래처럼 울었다.

 

김용규
숲의 철학자.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글쓰기, 교육과 강연을 주로 한다. 충북 괴산 ‘여우숲’ 공간을 연 설립자이자 그곳에 세운 ‘숲학교 오래된미래’의 교장이며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대표다. 숲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마침내 진정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숲에게 길을 묻다』, 『숲에서 온 편지』,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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