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밥통 스냅샷
상태바
두 개의 밥통 스냅샷
  • 박생강
  • 승인 2020.05.29 1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들의 한 물건

1977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박진규는 2014년부터 소설가 박생강으로 산다. 소설가 박생강은 박진규의 삶 속에서 이야기 소재를 찾아내고 가공해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아니면 소설가 박생강은 생활인 박진규의 일상에서 떠나 상상의 지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소설가 박생강은 발랄한 사유의 반지하에서 노닥거린다.

이런 거창한 표현은 사실 멋쩍고, 생활인 박진규의 게으른 빈둥거림이 소설가 박생강에게는 소설을 위한 망상의 워밍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 박생강은 죄의식 없이 마음껏 망상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대신 박진규가 프리랜서 기자와 칼럼니스트로서 생활인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생강은 생활인 박진규에 대해 감사히 여기거나 혹은 존경하지는 않는다. 박진규는 소설가를 택했고, 소설가의 자유를 위해 자신 스스로 희생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사이, 소설가 박생강은 생활인 박진규의 삶에 대해 좀 더 면밀하게 관찰하게 됐다. 박진규가 잊고 있던, 혹은 그의 기억 아래 가라앉아 있던 풍경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박생강은 그 스냅샷을 처음에 별다른 목적 없이 수집했다. 그것은 대개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일상을 포착한 한 장의 사진이나 단편적인 영상들의 형상이었다.

일곱 살의 크리스마스이브 자정 넘은 시각의 스냅샷. 어머니, 형과 함께 성당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박진규는 그때, 겨울눈을 밟던 순간에 체험한 뽀득뽀득한 소리와 감촉 같은 것들을 간직했다.

동네의 외진 골목에 안광을 반짝이던 커다란 개를 보고 놀라 도망치던 일도 저장했다. 형의 친구가 ‘84 태권V’ 장난감의 미사일을 쐈는데, 그 미사일이 눈을 찌르려던 순간 눈을 감았던 장면도 있다. 아마 그 미사일이 눈동자에 박혔다면 박진규는 피눈물이란 걸 처음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는 친구의 집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주워들었다. 그때 박진규는 그 조각으로 손목을 그을까 하다가 왼쪽 손바닥 생명선 위를 가로로 주욱 그었다. 그때 붉게 쏟아지던 피, 그리고 이내 터진 울음.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