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늘이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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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늘이 베스트
  • 윤정은
  • 승인 2020.05.2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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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그대가 주인공입니다 ▶ 사표 쓰던 날

그날은 볕이 찬란한 오월의 어느 토요일이었고, 나는 삼성동에 위치한 회사로 출근하던 중이었다. 전날도 늦은 밤까지 야근해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겨우 머리를 감고 잠이 덜 깬 채 택시에 실려 ‘회사에 도착하면 커피부터 진하게 마셔야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차창 밖은 찬란한 봄날, 이었다. 창 하나를 두고 이쪽과 저쪽의 온도 차는 극심했다. 몸살 기운에 유난히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크서클은 턱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무표정인 나와, 주말 한강 변의 초록 공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득 ‘어디로 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 꿈 헤는 밤, 꿈 같은 오늘

“손님, 삼성동으로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넉살 좋은 택시 기사님이 백미러로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생각을 입으로 뱉는 줄도 모르고 중얼거렸나 보다. 같이 빙긋 웃으며 택시에서 내렸고, 그다음 해 봄에 나는 퇴사했다. 사실, 퇴사는 처음이 아니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던 그 시절의 나는 이직과 퇴사가 잦았다. “내가 이런데 있을 사람이 아닌데, 왜 세상이 나를 몰라주지?”라는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목적지도 대상도 없는 열망만이 가득했다. 중소기업은 늘 일할 사람이 부족했고, 나는 비싸지 않은 임금을 받는 막내 순번이었으므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5년여간 10여 개의 직업을 전전했지만, 여전히 허했고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12월 31일 늦은 밤, 내 방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앉아 적어보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자문자답해보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론이 나왔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행위가 내겐 최대치의 행복이자 기쁨인데 선천적으로 뛰어난 사람만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수면 위로 꺼내어 보지도 못한 꿈이었다. 당시 나는 잦은 이직으로 주변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 책을 준비한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다양한 분야의 작가가 존재했다. 잦은 이직 덕에 기획안 쓰는 법 하나만은 제대로 익힌 나였다. 출간기획안과 샘플 원고를 만들어 출판사 스물다섯 군데 정도에 투고했다. 『해리 포터』를 저술한 조앤 롤링도 스무 군데가 넘는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고 책을 출간했다는 기사에 용기를 얻었다.고백하자면 원고가 채택되어 책이 출간되리라는 기대 따윈 없었다. 내 생각엔, 나는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었으니까.

“투고하신 원고를 출간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기적이다. 이건 기적이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투고한 지 일주일 만에 두 군데 출판사에서 출간하자는 연락이 왔고,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첫 책이 출간되며 그토록 꿈꾸던 글 쓰는 삶을 살 수 있었다.

50만 원의 계약금을 받아들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12년 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오늘의 내가 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잘 모르지만』, 『같이 걸을까』 등의 책을 출간했고 단편소설로 작은 상도 하나 받았다. 꿈같은 오늘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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