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1 - 마이너스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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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에세이 - 살며 사랑하며 1 - 마이너스의 손
  • 은정진
  • 승인 2020.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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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 별명은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뭐든 만지는 것마다 금으로 변하게 했던 미다스(마이더스) 왕과는 달리 내가 만지는 모든 것들은 부서지거나 고장이 났다. 탁상시계 알람을 맞추겠다고 돌리다 분침을 조정하는 다이얼이 부러졌다. 2만 원짜리 변신 로봇 왼팔은 산 지 한 시간도 안 돼 한순간에 조각났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어이구, 넌 만지기만 하면 어떻게 다 부서지고 고장을 내냐”며 본드로 로봇 팔을 꼼꼼히 붙여줬다. 아버지는 내게 ‘맥가이버’였다. 부서지고 끊어져 죽어가던 물건들도 아버지 손에만 들어가면 기적처럼 척척 살아나고 재탄생됐다.

 ‘마이너스의 손’이었기에 당연히 뭔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도 못 했다. 숙제로 붓글씨를 쓰다 결국 낙서판이 된 화선지를 본 어머니는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러면서 붓을 쥐어 잡고 나 대신 붓글씨를 써주셨다. 잘 쓰면 혼날까 봐 어린아이가 쓴 듯 일부러 삐뚤게 붓으로 써 내려간 ‘忍耐’(인내)라는 가훈이 어렴풋하게 생각난다. 두 사람은 마이너스 일쑤였던 어린 시절 내내 내게 플러스를 안겨준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절대자처럼 나를 지켜보며 언제나 내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척척 잡아 해결해줄 것만 같았다.

 “정진아. 스마트폰에 있는 카카오톡 친구 목록이 다 지워졌어. 분명 별거 안 눌렀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뭐든 다 해결할 줄 알았던 자신만만했던 아버지의 손가락은 어느덧 30년이 지나 휴대전화 버튼 하나로 메신저 목록을 지우고, 저장된 음악들을 단박에 날려버릴 만큼 매 순간 떨리고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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