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삶의 현장이 곧 선정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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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신화] 삶의 현장이 곧 선정의 공간이다
  • 동명 스님
  • 승인 2020.01.02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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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부나무

장엄한 농경제에 참여한 어린 왕자 싯다르타 우리나라가 엄연히 농업 국가였던 시절, 대통령이 들에 나가 모를 심거나 벼를 베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농업 국가였던 까삘라왓투에서도 매년 농경제(農耕祭)라는 행사가 열렸다. 왕과 대신들이 들에 나가 농부들과 함께 일을 하며 민심을 돌보는 행사였다. 이 농경제에서 어린 붓다의 특별한 신화가 탄생한다.

『마하붓다왕사』에는 농경제 모습을 대단히 장엄하게 그려놓았다. 행사가 열리는 논에는 모두 일천 개의 쟁기가 준비되는데, 그중 800개의 쟁기가 왕과 대신들을 위한 것이었다. 대신들에게 할당된 쟁기는 모두 은 장식품들로 장엄되어 있고, 멍에를 멘 소와 몰이 막대까지 준비되었다. 왕이 다루게 될 쟁기는 붉은 금으로 장식되었다. 『밀린다왕문경』에 따르면, 처음으로 농경제에 참여한 왕자는 겨우 생후 1개월째였다. 행사장 근처의 시원한 잠부나무 아래에 시녀들은 붉은 비단을 깔고 그 위에 어린 왕자를 뉘었다. 위에도 붉은 비단으로 천장을 만들고 아름다운 휘장을 친 다음 시녀들이 왕자를 지키고 돌보았으며 호위병들이 배치되었다.

행사장에서는 천 개의 쟁기가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같으면 언론사의 카메라들이 한꺼번에 셔터를 누르거나 영상 촬영에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졌다. 인파를 피해 행사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 왕자를 모시다 보니 왕자를 돌보던 시녀들과 호위병들은 행사장 광경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마하붓다왕사』에 따르면 왕자를 돌보던 시녀들과 호위병들은 궁금증을 못 이겨 모두 농경제를 구경하러 가게 된다. 그런데 홀로 남은 왕자에게 믿을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홀로 깊은 선정에 들다

아기 왕자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결가부좌 자세로 앉았다. 그러고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색계 초선을 성취했다. 어디까지나 이 부분은 신화임을 감안해야 한다. 생후 1개월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어떻게 결가부좌가 가능하겠는가? 『밀린다왕문경』에서 나가세나 존자는 밀린다왕에게 왕자가 제4선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고 전한다. “대왕이여! 일찍이 보살이 생후 1개월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일을 하고 있을 때에 보살은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 길상의 자리에서 결가부좌하고 갖가지 욕망을 떠나고 착하지 않은 것들을 여의었고, 성찰 작용과 고찰 작용이 있었으며, 멀리 떠남으로부터 생긴 기쁨과 안락함이 있는 제1선의 경지에 도달하여 그곳에 안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제4선의 경지에 도달하여 그곳에 안주하였습니다.”*

시녀들과 호위병들은 넋을 잃고 농경제를 구경하였다. 어느덧 시간이 정오를 지나 오후에 접어들자 나무들은 그림자의 방향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왕자가 앉아 있는 잠부나무 그늘은 시간이 지나도 처음의 둥근 모양 그대로였다.

정신을 차리고 왕자 곁에 돌아온 시녀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왕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편 그 모습이 너무도 성스러워 시녀들은 저절로 합장하였다. 그들은 급히 왕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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