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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신화] 삶의 현장이 곧 선정의 공간이다
잠부나무

장엄한 농경제에 참여한 어린 왕자 싯다르타 우리나라가 엄연히 농업 국가였던 시절, 대통령이 들에 나가 모를 심거나 벼를 베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농업 국가였던 까삘라왓투에서도 매년 농경제(農耕祭)라는 행사가 열렸다. 왕과 대신들이 들에 나가 농부들과 함께 일을 하며 민심을 돌보는 행사였다. 이 농경제에서 어린 붓다의 특별한 신화가 탄생한다.
『마하붓다왕사』에는 농경제 모습을 대단히 장엄하게 그려놓았다. 행사가 열리는 논에는 모두 일천 개의 쟁기가 준비되는데, 그중 800개의 쟁기가 왕과 대신들을 위한 것이었다. 대신들에게 할당된 쟁기는 모두 은 장식품들로 장엄되어 있고, 멍에를 멘 소와 몰이 막대까지 준비되었다. 왕이 다루게 될 쟁기는 붉은 금으로 장식되었다. 『밀린다왕문경』에 따르면, 처음으로 농경제에 참여한 왕자는 겨우 생후 1개월째였다. 행사장 근처의 시원한 잠부나무 아래에 시녀들은 붉은 비단을 깔고 그 위에 어린 왕자를 뉘었다. 위에도 붉은 비단으로 천장을 만들고 아름다운 휘장을 친 다음 시녀들이 왕자를 지키고 돌보았으며 호위병들이 배치되었다.
행사장에서는 천 개의 쟁기가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같으면 언론사의 카메라들이 한꺼번에 셔터를 누르거나 영상 촬영에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졌다. 인파를 피해 행사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 왕자를 모시다 보니 왕자를 돌보던 시녀들과 호위병들은 행사장 광경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마하붓다왕사』에 따르면 왕자를 돌보던 시녀들과 호위병들은 궁금증을 못 이겨 모두 농경제를 구경하러 가게 된다. 그런데 홀로 남은 왕자에게 믿을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홀로 깊은 선정에 들다
아기 왕자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결가부좌 자세로 앉았다. 그러고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색계 초선을 성취했다. 어디까지나 이 부분은 신화임을 감안해야 한다. 생후 1개월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어떻게 결가부좌가 가능하겠는가? 『밀린다왕문경』에서 나가세나 존자는 밀린다왕에게 왕자가 제4선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고 전한다. “대왕이여! 일찍이 보살이 생후 1개월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일을 하고 있을 때에 보살은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 길상의 자리에서 결가부좌하고 갖가지 욕망을 떠나고 착하지 않은 것들을 여의었고, 성찰 작용과 고찰 작용이 있었으며, 멀리 떠남으로부터 생긴 기쁨과 안락함이 있는 제1선의 경지에 도달하여 그곳에 안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제4선의 경지에 도달하여 그곳에 안주하였습니다.”*
시녀들과 호위병들은 넋을 잃고 농경제를 구경하였다. 어느덧 시간이 정오를 지나 오후에 접어들자 나무들은 그림자의 방향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왕자가 앉아 있는 잠부나무 그늘은 시간이 지나도 처음의 둥근 모양 그대로였다.
정신을 차리고 왕자 곁에 돌아온 시녀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왕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편 그 모습이 너무도 성스러워 시녀들은 저절로 합장하였다. 그들은 급히 왕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고했다.
“대왕이시여, 왕자가 특별한 자세로 평안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 모습이 지극히 성스러워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무의 그늘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고 있는데, 왕자가 앉아 있는 잠부나무의 그늘은 정오가 지났는데도 처음의 둥근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숫도다나왕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왕자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이 특별한 기적을 보고 감탄했다. “아, 거룩한 아들이여! 이것으로 너의 아버지인 내가 너에게 두 번째로 경배하게 되는구나.” 숫도다나왕은 아들에게 사랑과 숭배의 마음을 담아 절을 올렸다.

* 이미령 옮김, 『밀린다왕문경(2)』, 민족사, 2000, 183쪽; 『彌蘭王問經』 卷17(N[한역남전대장경]64.93a8-10; PTS.Mil.366):
“菩薩曾生一個月之時, 作父釋迦之業務時, 於涼閻浮樹之蔭, 於吉祥之臥牀, 結跏趺坐, 離諸欲, 離不善法,
有尋有伺達自離生喜與樂之初禪而住 ……乃至…… 達第四禪而住.”

‘위없는 깨달음의 길’이 바로 선정에 있다.

『맛지마니까야』의 「마하삿짜까 숫따(Mahā-saccaka Sutta)」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이나교도 삿짜까에게 당신의 깨달음의 과정을 길게 설명했는데, 바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악기웻사나여, 그때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삭까족의 농경제 의식을 거행하실 때 나는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에 앉아서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 되지 않을까?’ 악기웻사나여, 이 기억을 따라서 내게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의 길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처님은 갖은 고행이 모두 소용없음을 확인하신 후 바로 잠부나무 아래서 선정에 들었던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그 기억을 되살려 정진한 끝에 진정한 깨달음의 길에 도달하신 것이다. 잠부나무 아래서 선정에 들었던 일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부처님께서 계(戒)・정(定)・혜(慧) 등 세 가지 배움을 말씀하셨던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계는 바른 생활이요, 정은 마음을 고요히 함이요, 혜는 마음을 지혜롭게 함인데, 계와 정이 모두 궁극적인 깨달음(혜)의 길로 가는 바탕이 됨을 우리는 이 신화 속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삶의 현장이 곧 선정의 공간이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은 싯다르타 왕자의 선정 경험을 다른 각도에서 그리고 있다. 왕자의 나이 12세 때에 숫도다나왕은 삭까족 동자들과 함께 들에 나가 쟁기질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농부들은 거의 벌거숭이로 쟁기질을 하고 있는데, 소의 속도가 느려지면 소의 엉덩이를 고삐로 사정없이 후려치곤 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무거운 쟁기를 땅에 깊숙이 박은 채로 땀으로 범벅이 된 농부와 드러눕고 싶어도 채찍질 때문에 할 수 없이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가는 소의 모습은 싯다르타에게 참으로 처참해 보였다. 그때 왕자는 더욱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보습 날 사이로 하얀 벌레들이 모습을 나타냈는데, 그 벌레들을 새들이 날아와 재빠르게 쪼아먹었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아아, 세간의 중생들은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과 가지가지 고뇌 속에서 떠나지 못하는구나. 어찌하여 이들은 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고요한 지혜를 구하지 않으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을 찾아 거기서 벗어남을 꿈꾸지 않는가? 나는 이제 고요하고 한가한 곳을 찾아서 이 문제를 궁구하리라.”
왕자는 잠부나무 밑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골똘히 탐구하다가 깊은 선정에 들었다. 이 일화속에서 왕자가 선정에 드는 장면은 마치 화두를 참구하는 선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농경제와 선정의 관계 혹은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농경제는 먹고 먹히는 관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뭇 생명의 삶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싯다르타 왕자는 실제로 농경제에서 중생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관
찰한다. 농부들의 피폐한 삶과 채찍을 두들겨 맞으며 일해야 하는 소들의 고통, 쟁기질을 할 때 흙 속에서 튀어나오는 생명체들, 보습 날에 찍히는 벌레와 그 벌레를 쪼아먹는 새, 이런 뭇 생명의 모습이 축제가 되는 현장이 곧 농경제였다. 그 농경제와 관련하여 어린 붓다가 선정에 들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선정은 삶과 관련된 번뇌로부터 고요해지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함을 이 일화는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농경제보다도 더 생생한 삶의 현장에 있는 우리도 어린 시절 선정에 들었던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수행한다면 수행에 큰 성취가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북한산 중흥사에서 살고 있다. 출가 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동명 스님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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