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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의 일상다담(日常茶談)] 미쳐보세요, 사는 게 재밌어집니다!서울 대각사 주지 동봉 스님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1975년 불문에 귀의했다. 해인사승가대학, 중앙승가대학교,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BBS 불교방송에서 <살며 생각하며>, <자비의 전화>
생방송을 진행했으며, 2004년부터 2009년 초까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불교 전법 및 말라리아
환자 구제 활동을 펼쳤다. 현재 서울 대각사 주지, 곤지암 우리절 회주 소임을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내비 금강경』, 『법성게』, 『반야심경 여행』, 『평상심이 도라 이르지 말라』 외 다수가 있다.

한국불교사는 물론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백용성 스님(1864~1940)이 창건한 절 대각사. 불교 혁신과 민족 독립운동의 산실인 그곳에서 주지 동봉 스님을 만났다. 오래전 용성 스님이 불교와 세상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것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전법에 매진하고 있는 동봉 스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체유인조, 모든 것은 몸과 마음을 가진 인간이 만든다. 

날이 춥다. 방도 춥다. 대각사 안쪽 심검당에서 동봉 스님을 기다리는데 바닥 냉기에 발이 다 시렵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스님이 오셨다. 냉큼 인사를 드리고 좌복 위에 앉았다. 스님이 내어준 따뜻한 보이차 한잔 들이켜니 몸이 사르르 녹는다. 역시 추울 땐 따뜻한 차가 제격이다. 그렇게 찻잔 하나 손에 들고, 스님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몸을 녹였다. 가볍게 근황을 주고받다가 스님 옆에 놓인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내비 금강경』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단 책. 최근 스님이 펴낸 금강경 해설서다. 스님께 책 출간 축하 말씀을 건네고 여쭈었다. 책 쓰는 일이 스님께 어떤 의미인지. 지금까지 무려 63권의 책을 펴낸 스님이다. 그 수만 보더라도 뭔가 특별한 뜻이 있을 것 같았다. “1993년 불광출판사에서 『평상심이 도라 이르지 말라』라는 책을 냈어요. 용성 스님 어록을 최초로 풀이한 책이죠. 그것을 시작으로 많은 책을 썼어요. 특히 경전에 관한 책을 많이 냈습니다. 이번 책 제목에 내비(게이션)라는 말을 썼는데요. 저는 경전이 우리 삶의 지침서, 지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갈 때, 그냥 가는 것과 지도를 갖고 가는 것은 차이가 있잖아요. 길을 안내해 줄 무언가가 있다면, 길을 잘못 들거나 헤맬 일이 없을 겁니다. 제가 계속해서 책을 쓰고 출판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바른 인생길을 안내해주기 위해서예요. 그중에도 금강경은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삶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스님은 앞으로 불교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한 책을 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테면 어린이를 위한 동화나 만화, 가정주부나 직장인들을 위한 생활밀착형 불교 책. 이제는 불교 교리를 곧이곧대로 설명하기보다 대중의 현실과 관심사에 접목해 소개해야 한다는 게 스님 생각이다. 각자 처지에서 다양하게 읽히고 해석될 때 불교의 생명력이 살아나고, 불교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스님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다소 생뚱맞게도 ‘물리학’이라 한다.
“‘음펨바 효과’라고 들어보셨어요?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왜 그런지 알지 못하다가 지난 2013년 문제가 풀렸죠. 뜨거운 물은 분자 간의 거리가 멀어서 더 많은 에너지를 빠른 속도로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풀리기 전에, 사실 제가 먼저 답을 찾았어요. 농담 같죠? 2006년 탄자니아에 갔다가 음펨바라는 물리학자를 만났어요. 그가 말하길, 자신이 중학생 때 우유 얼리는 실험을 했대요. 그런데 운동장에서 놀다가 교실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친구들보다 우유를 덜 식힌 채 냉동고에 넣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런데 웬걸? 나중에 꺼내 보니 자기 우유만 얼었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이유를 모르고, 자기도 모르고, 심지어 물리학자가 된 그때까지도 답을 못 찾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분자 사이가 벌어져서 그런 거라고. 그 말을 듣더니 ‘에이~’ 하더군요. 그러다 2013년에 탄자니아에서 다시 만났는데, 제 손을 덥석 잡더니 ‘스님 말이 맞았어요’ 하더라고요. 신기하죠? 제가 특별히 물리학을 잘 알았던 것도 아닌데 얼떨결에 답을 맞혔으니까요.” 이 인연이 발단이 되어 스님은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리학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불교가 더 잘 보이더라는 것이다. 불교는 늘 마음만을 강조해서 물질세계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물리학을 통해 시야가 넓어졌다고 한다.
“부처님 말씀, 모든 경전에는 즉물(卽物)과 즉심(卽心)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둘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기셨어요. 여기서 ‘즉’은 ‘서로 교류한다, 관계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마음과 몸, 정신과 물질을 함께 알아야 해요. 우리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해서 매번 마음만을 강조하는데, 저는 그 말을 살짝 돌려서 ‘일체유인(人)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요.”

형님 스님, 아우 신부님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참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조건으로 말미암아 그에 따른 결과가 나타난다는,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 ‘연기(緣起)’를 표현한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동봉 스님의 삶 역시 인연의 연속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연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틈에서 불법의 가치를 전해온 것이 스님 삶의 요약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펼친 전법과 말라리아 구제 활동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킬리만자로로 여행을 떠나게 된 스님은 그곳에 최초로 한국불교의 씨앗을 심었다. “2004년 속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잠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어요. 때마침 아는 스님이 같이 킬리만자로에 가자고 하기에 동행했죠. 그런데 가서 보니까 그 땅에는 불교가 없는 거예요. 탄자니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54개국 어디에도 불교는 없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딱 두 개뿐이었죠. 그래서 이곳에 한국불교의 씨앗을 심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처음 사람들은 이미 종교가 두 개나 있는데 뭐하러 또 종교를 들여오려 하느냐고 부정적으로 바라봤어요. 제가 말했죠. 이건 종교가 아니라 영양소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여럿 있는데, 나는 그중 하나를 더해주려는 것이라고요. 그 후로 52개월 동안 탄자니아에서 활동했습니다. 주로 한 일은 말라리아 환자를 돕는 일이었고요.”
스님은 킬리만자로에 가까운 아루샤와 모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을 돌며 구제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마을을 돌며 말라리아 의심 환자를 찾아내고, 그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 검사와 치료를 받도록 했다. 혈혈단신 낯선 땅에서 지내기도 벅찰 텐데 힘들지 않으셨냐 물으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먹고 사니까 한 달 정도 지나니 적응이 되었다고. 물론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게 스님 말씀이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스님은 또 한 번 소중한 인연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남수단의 슈바이처, 톤즈(Tonj)의 성자’라 불리던 이태석 신부다. “2006년 킬리만자로에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어요.이태석이래. 난 누군지 잘 몰랐으니까, ‘누구신데요?’ 하고 물었더니 신부라는 거야. 한번 만나자고 해서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났죠. 서로 대화가 잘 통하더라고요. 나이가 9살이 많아서 제가 ‘형님’, 이태석 신부님이 ‘아우’가 됐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신부님이 제게 묻더군요. 스님은 이곳에 온 특별한 계기가 있느냐고요. 저는 학교를 짓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듣고있던 신부님이 ‘예수님이나 석가님이 지금 세상에 오신다면, 교회나 절보다 학교를 짓지 않을까요?’ 하더군요. 저도 맞장구쳤죠. 그렇게 서로 의기투합해서 학교 지을 땅을 살피려고 함께 탄자니아로 돌아왔습니다. 다르에스 살람(Dares Salaam)에서 3일간 학교 부지를 보려 다녔는데 좋은 땅이 없어서 결국 구하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뒤로도 스님은 이태석 신부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혼자서 탄자니아 곳곳을 돌아다니다 2년 후 부지를 매입했다. 스님은 그 땅을 종단에 기증했고, 지난 2016년 3년간의 공사 끝에 그곳에 ‘보리가람 농업기술 대학’이라는 이름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 마침내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다이내믹한(?) 스님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있자니, 스님에겐 남다른 추진력이 있다 싶었다. 그 힘을 나도 좀 얻고 싶어 스님께 비결을 물었다. “한번 미쳐보세요. 도박이나 마약같이 나와 남에게 해로운 것 말고요. 어떤 일에 푹 빠져서 미쳐보면 사는 게 재밌습니다. 그런 삶에서 자기만의 세계가 열리기도 하고요. 저는 요즘 한자 파자(破字)에 빠져 있거든요. 연말이고 또 곧 새해고 하니까, 한자로 새해 화두를 하나 드릴게요. 용서할 ‘서(恕)’. 이 ‘恕’ 자를 들여다보면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입니다. 즉 내 마음이 너와 같아지는 것이 ‘용서’라고 할 수 있어요. 새해는 서로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스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2020년 한 해는 미칠 ‘광(狂)’ 자와 용서할 ‘서(恕)’ 자를 들고 살리라 다짐한다. 무엇에 미치고, 무엇을 용서할지는 아직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말이다.

글.
양민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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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호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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