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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업보와 육취, 그리고 지옥

『팔천송반야경』 7장 지옥편에서 세존은 반야바라밀다를 비방하고 유정들의 이익과 행복을 끊는 등의 행위로 악업을 쌓은 어떤 보살마하살들은, 이와 같은 ‘이전(생)의-업-보(pūrva=karma=vipāka)’로 인해 ‘지옥’의 니라야(niraya), 그것도 ‘대-지옥’의 마하-니라야(mahā=niraya)로 이끌어지며, 무한정은 아니지만 인간의 셈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랜시간 동안 ‘열(熱)/화(火)에 의한-세간의 파괴’ 또는 겁화(劫火)라고 번역되는 테자흐=상와르타니(tejas=saṁvartanī)를 거듭하며 생겨난 수많은 세간들을 거치며 대지옥들에 태어나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가장 무거운 죄라고 말하는 5-무간-업(五無間業, pañca=ānantarya=karman)도 이에 전혀 비길 바가 되지 않는다고 세존께서 이야기하시는, 대지옥으로 이끄는 최대 중죄의 업이란 과연 어떠한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악업

이러한 업은 ‘아쿠샬라-카르만(akuśala=KAR-man)’으로 불리는 악업(惡業)으로, 이를 ①심적(意) 악행에 따른 업, 이로 인해 잇달아 저지르게 되는 ②언어적(口) 악행에 따른 업, ③신체적(身) 악행에 따른 업 등 세 가지로 나누며, 7장 지옥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어떤 자들은 반야바라밀다가 말해지고 가르쳐지며 보여질 때 이를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意-惡業), 이를 반대하고 저주하며 ‘여기에서 수련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여래가 설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니라(口-惡業). 그런 뒤, 그들은 다른 유정들 또한 이 반야바라밀다를 버리게 만들 것이니라(身-惡業).”

지난 호에서 언급한 것처럼 10선업도와 관련한 삼업 또는 삼-선업은 그 열 가지가 나열되는 순서와 부류에 따라 신업·구업·의업의 순서, 즉 불-살생에서 시작하여 불-망어를 거쳐서 불-사견에 이르는 순서로 나타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세존의 말씀에 따른다면, 10악업도와 관련한 삼업, 즉 삼-악업은 그와 반대로 의-악업·구-악업·신-악업의 순서, 즉 사견에서 시작하여 망어를 거쳐 살생에 이르는 순서로 배열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범본 『이만오천송반야경』이나 니카야(Nikāya) 등에서 십악업도는 십선업도와 마찬가지로 살생에서 망어를 거쳐 사견에 이르는 순서로 배열되어 나타난다.

업이란?

이러한 시점에서 선업이든 악업이든, 업(業, KAR-man)이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다. 이 단어에 대한 해석은 입장에 따라 다르게 내려질 수 있기에, 여기서는 『앙굿타라-니카야(Aṅguttara=Nikāya 6:63)』에서 세존이 업에 관해 구체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이야기하시는 구절을 소개하는 선에서 그치기로 한다. “비구들이야, 내가 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의지(意志)이니라. 의지가 발했기에 중생은 몸, 말,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업의 원천과 기원은 무엇일까? 〔물질계
와의〕 접촉(觸)이 바로 업의 원천이고 기원인 것이니라… 그러면 〔더 이상 쌓이지 않게 되는〕 업의 소멸은 어떠한 것일까? 접촉의 소멸로 업의 소멸이 발생하는 것이니라. 8성도는 〔바로 이러한〕 업의 소멸로 이끄는 수행도인 것이니라.” 여기에서 의지(意志)와 소멸을 나타내는 팔리어 단어는 산스크리트와 같은 형태의 체타나(CET-anā)와 니로타(ni-RODH-a)이다. 이에 반해 접촉을 표현하는 팔리어 파사(phassa)는 앞서 12연기에서 언급했던 산스크리트 스파르샤(SPARŚ-a)에서 변화된 형태의 단어이다.

오취? 육취?

앞서 소개한 세존의 말씀을 따른다면, 모든 중생은 선하거나 악한 의지의 발현으로 마음·말·몸의 삼업과 관련한 선업 또는 악업을 쌓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업이 결실을 맺게 되는 다음 생이나 그 이후의 생에서 업의 과보로 인해 태어나게 가게 될 로카(loca), 즉 계(界)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선업의 결실을 맺은 경우 ①데바(deva)의 천신-계와 ②마누샤(manuṣya)의 인간-계이고, 악업의 결실을 맺는 경우 ③아수라(asura)의 아수라- 또는 수라-계, ④프레타(preta)의 아귀-계, ⑤티르약-요니(tiryag=yoni)의 축생-계, ⑥니라야(niraya)의 지옥-계이다. ‘가게 됨, 길’의 의미로 가티(gati)란 용어가 쓰이며, 경전에 따라 단어 앞에 수사 ‘6’이 붙어 삿-가티(ṣaḍ=gati) 또는 아수라계가 빠진 ‘5’의 수사가 붙어 판차-카티(pañca=gati)로 표현되고 있다. 한역에서는 ‘이름/다다름’의 취(趣)가 들어간 5취(五趣)나 6취(趣) 외에도 ‘길’의 의미에서 도(道)가 들어간 5도(五道)나 6도(六道)로 의역된다.
6취의 경우 범본 『팔천송반야경』과 『이만오천송반야경』 전반에 걸쳐 단 1회 언급되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31장 「법상보살」 편에서 법상보살이 상제보살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법성을 진여지하지 못하는 자들의 방식대로 여래들의 오고 감을 만들어내는 자들 모두는 〔천신계·인간계·아수라계·아귀계·축생계·지옥계〕 6취의 윤회에 들어간, 들어가고 있는, 들어갈 자들로서 반야바라밀다에서 불타의 법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반면 아수라계가 빠진 5취에 대해서는 『이만오천송반야경』과 『만팔천송반야경』에서 각각 19회로 6취보다 훨씬 더 높은 빈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5취가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듯 보인다.

삼악취

이러한 상황에서 악업의 고과(苦果)로 가게 되는 5취의 마지막 세 개가 3악취(三惡趣)란 용어로 정립되어 있다. 여기서 악취는 산스크리트 아파야(apāya)에 대한 의역이다. 아파야는 ‘to go’의 어근 ay에 ‘away’의 접두사 apa와 명사파생 접미사 a가 붙어 ‘(떠나) 가버림; going away’의 어원적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문맥상 천신계나 인간계와 같은 좋은/편안한/최선의 곳이 아닌 아귀계·축생계·지옥계와 같은 나쁜/불편한/최악의 곳으로 가버리게 된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그러나 『팔천송반야경』 등에서는 3악취에 아수라계가 포함되어 4악취로 표현되고 있다. 11장 「마왕의 소행」 편에서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수보리야, 더욱이 반야바라밀다를 기록하고 말하고 수련할때, 누군가 그 (장소)에 와서… ‘지옥들…축생계…아귀계…아수라의 육신들은 이처럼 고통스럽다. 제약을 받는 유위(有爲)들은 이처럼 고통스럽다. 바로 이 세간에서 고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를〕 불화를 조장하는 마왕의 소행으로 알아야 할 것이니라.” 그리고 악취의 순서는 잘 알려져 있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와 달리 반야경들에서 일정하게 지옥-축생-아귀-아수라로 배열되고 있다.
 

육취윤회

그런데 6취이든 5취이든 취(趣)에 대응하는 삿-가티(ṣaḍ=gati)는 반야경들에서 예외 없이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나타난다. 형용사의 형태는 가티에 형용사파생 접미사 ka가 붙는 가티-카(gati-ka)란 단어이며, 따라서 삿- 또는 판차-가티카의 의미는 ‘여섯/다섯 개의 〔세계〕로 가(게 하)는’이 된다. 그리고 이 형용사가 수식하는 단어는 반야경에서 예외 없이 윤회(輪廻)로 번역되는 바로 상사라(saṁsāra)이다. 이 용어는 ‘달리다, 나아가다, 흘러가다’의 어근 sar, ‘함께’의 접두사 sam, 명사파생 접미사 a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에 따라 그 어원적 의미는 ‘함께 달림/나아감/흘러감’이 되지만, 불교에서의 윤회는 업의 과보에 따라 모든 생명체에게 삶과 죽음(生死)이 결합된 흐름이 반복적으로 계속된다는 의미이며, 차크라-와르타나(cakra=vartana)로도 표현될 수있다. 이 시점에서 형용사와 명사, 이 두 개가 결합하여 갖게 되는 ‘삿- 또는 판차-가티카 상사라’를 번역한 불교 용어를 찾아보기로 한다. 검색한 결과, 육취윤회(六趣輪廻) 또는 육도윤회(六道輪廻)로는 나오지만, 오취나 오도가 붙은 합성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볼 때, 6취나 6도가 처음의 출발선에 서 있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육취로 가는 길

그렇다면 육취윤회에 따라 최하의 지옥계와 최상의 천신계에 다시 태어나 게 된다면, 이러한 태어남의 길은 어떻게 정해지게 되는 것일까? 『앙굿타라-니카야(Aṅguttara=Nikāya 8:11)』에서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몸,말 및 마음으로 사악한 행위를 저지르고(身-惡業), 존귀한 사람들을 비방하며(口-惡業), 사견을 고수한(意-惡業)… 이러한 중생들은 육신이 파괴되고 죽은 뒤 고통의 층에서, 불쾌한 장소에서, 하위의 세계에서, 지옥계에서 다시 태어났느니라. 그러나 몸, 말 및 마음으로 선한 행동을 하고, 존귀한 사람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정견을 갖는… 중생들은 육신이 파괴되고 죽은 뒤 유쾌한 장소에서, 천신계에서 다시 태어났느니라.”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삼-악업이 신-악업·구-악업·의-악업의 순서로 나열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악업]의 문단에서 세존께서 언급한 순서와 정반대라는 점이다. 반야부의 경전들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팔천송반야경』에 따라 이해해보려는 필자에게 이러한 순서의 뒤바뀜은 망집이나 고통을 끊어 내는 길(道)은 육신의 바른 행위에서 시작되어 말과 마음의 선업으로 이어지는 반면, 업은 반대로 마음의 악한 성향이 원인이 되어 말과 육신의 악업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
든다.

나라카와 니라야

삼업과 관련하여 악한 업을 쌓게 되면, 그 길은 결국 지옥으로 이끌어진다고 불교에서 말하고 있다. 나락(奈落)으로 음역되는 산스크리트 나라카(naraka)는 일반적으로 ‘지옥; hell’의 뜻으로 이해하며 사용되고 있다. 베다 문헌 이래로 전해 내려오는 나라카는 사실 첫 모음이 장음인 nāraka로 시작되었다. 의미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옥’ 외에 가장 하층에 자리 잡고 있기에 ‘하위세계’의 의미로도 통하고 있으며, 팔리어 사전에 ‘심연’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아직까지 정확한 어원을 알 수 없는 상태이지만, 나라카의 nār° 또는 nar°가 희랍어 네르-텐(νέρ-ϑην)이나 에-네르-텐(ἔ-νέρ-ϑην) ‘아래/지하에서부터’, 에네로이(ἔ-νερ-οι)나 네르-테로이(νέρ-τεροι) ‘지하/땅속에 사는 사람들’에서의 ner°와 형태적·의미적 유사성 때문에 그 원래의 의미는 아마도 ‘하부/하층’이고, 그 형태는 nis > nir > nair > nār > nar와 같이 nis의 산디(sandhi)와 브룻디(vṛddhi) 현상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역사-비교언어학에서 추측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지옥’에 대해 니라야(niraya)가 존재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to go’의 어근 ay에 ‘out’의 접두사 nis와 명사파생 접미사 a가 붙어 있기에 ‘(떠)나감; going out/off, departing’이 된다. 앞선 ‘악취’의 apāya와 유사한 의미를 갖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팔천송반야경』의 경우 니라야의 단어만이 사용되는 반면, 『이만오천송반야경』에서는 나라카와 니라야 모두가 나타나고, 『만팔천송반야경』은 나라카만으로 ‘지옥’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악업의 고과로 인해 (떠나) 간다는 지옥은
과연 어떠한 곳일까?

● 다음 어원 여행의 대상은 팔대지옥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전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도유럽어학과에서 역사비교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연구재단 지원 하에 범본 불전(반야부)을 대상으로 언어자료 DB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대 언어학과와 연세대 HK 문자연구사업단 문자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팔천송반야경』(2019, 불광출판사),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반야바라밀다심경』(2012, 지식과 교양),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신묘장구대다라니경』(2005, 한국문화사)이 있다.

전순환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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