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십선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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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십선업도
  • 전순환
  • 승인 2019.09.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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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칼럼을 이어가기로 한다. 8성도(八聖道)의 경우 범본 『팔천송반야경』의 20장「방편선교」에는 ‘8’과 ‘성’이 빠진 ‘길,도(道)’의 마르가(Mārg-a)로만 표현되고 있을뿐, 앞서 니카야(Nikāya)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한 가지흥미로운 사실은 니카야에서 8성도가무엇인지 정의하는 세존의 말들이 이번 칼럼의 대상인 10선업도(十善業道)의 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8성도 가운데 특히 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이 그러하다. 그렇다면『팔천송반야경』에서 8성도 그 각각의 내용은 17장「불퇴전 보살의성향·특성·근거」에 나오는10선업도로 설명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십선? 십선업?

십선업도를 검색해보면, 거의 대부분 ‘십선’ 또는 ‘십선업’의 표제어와 간략한 그 내용만을 볼 수 있을뿐이지만,<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경우 다른곳보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이용어에 대한 개설의 내용을 보니 필자가 알고 있는것과 사뭇 다르게 쓰여 있다. ‘십선’이란 표제어하에 놓인 개설에 따르면 ‘십선업’이 별칭이고, 부파불교에서는 십선업도라고 불렀으며, 『반야경』 등 초기의 대승경전에서는 십선계(十善戒)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상기한 내용처럼 『팔천송반야경』을 비롯한 대승의 여러 경전들에서 예외없이 일정하게 표현되는 완전한 명칭은 ‘십선’도 ‘십선업’도 아닌 ‘십선업도’, 산스크리트로는 다샤-쿠 샬라-카르마-파타(daśa=kuśala=karma=patha)이며, 그 의미는 한역을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한 ‘열 가지-선한-행위의-도’가된다. 범본 『팔천송반야경』의 3장「바라다와 불탑의 공양」에서 세존께서 천제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 반야바라다라는 주술을 얻은 후에는 십선업도가 세간에 퍼지 느니라 …유정들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보살마하살들은 …십선업도를 세간에 널리 퍼지게 하느니라…”

불퇴전의 보살마하살

또한 지켜야 할 열가지 계율로서 ‘십선계(十善戒)’로도 검색이 된다. 여기서 의‘계’는 쉴라(śīla)를 의역한 단어이고, 지계(持戒)로도 번역되어 지계바라다 (śīla=pāramitā)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비록 십선계가 범본 반야부에서 쓰이지 않는 명칭이지만, 십선업도가보살(bodhi=sattva)마하살(mahā=sattva)의 품(品)을주제로 하는 『팔천송반야경』의 17장에서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십선계란 단어가 만들어진 이유를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을듯 하다. 세존께서 수보리에게 말하신다. “꿈속에 들어가서라도 보살마하살은 십악업도(十惡業道)를…범하지 않느니라. 마음으로라도 행하지 않느니라 …불퇴전의 보살마하살은 꿈속에 들더라도 십선업도가 실현되느니라 …이러한 성향 특성 근거를 갖춘 보살마하살이 무상의 올바른 깨달음에서 불퇴전(不退轉)한다고 마음에 새겨져야 할 것이니라…” 십악업도에서의 ‘악(惡)’은 ‘선’의 쿠샬라(kuśala)에 부정의 접두사 아(a)가 붙은 아-쿠샬라(a-kuśala)이지만, 원래 이 단어는 쿠샬라-아쿠샬라(kuśala=akuśala)를 번역한 ‘선불선(善不善)’에서처럼 ‘불선’의 의미를 갖는다. 불퇴전이란 단어는 ‘물러서는, 퇴전하는’의 위니와르타니야(vi-ni-VART-anīya)에 부정의 a-가붙어만들어 진형용사로서 경전 전반에 걸쳐서 전적으로 보살마하살을 수식하는 단어로만 사용되고 있다.

열 가지 선한 행위 의도

8성도와 10선업도가 고통들의 근원인 집착이나 망집을 소멸시켜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반야부의 경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니카야에서는 어떠할까? 문헌을 찾아보니 『앙굿타라-니카야 (Aṅguttara=Nikāya 8:39)』7에 다음과 같은 세존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한 존귀한 제자는 살생을 버린 후 살생을 금하느니라. 살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존귀한 그 제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유정들에게 두려움, 적개심 및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부여하느니라. 그리하여 그 제자 자신도 결국 공포, 적대감 및 고통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해방을 누리느니라…”

불살생

고의로 살아있는 것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살생(不殺生)을 포함한 열 개의 선업(善業)들은 범본 반야경들에서 일정한 문장의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산디를 적용시키지 않고 『팔천송반야경』 17장의 산스크리트 원문과 번역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vinivartanīyaḥ·Bodhisattvaḥ·Mahāsattvaḥ·daśakuśalān·Karmap athān·samādāya·vartate |“불퇴전의·보살·마하살은·10선의·업도를· 수용한 후·나아가느니라.” saḥ·Ātmanā·ca·Prāṇātipātāt·prativirata ḥ bhavati | Parānapi ca·Prāṇātipātaviramaṇāya·samādāpayati | “그는·스스로·살생을·멈추고,타인에게도·불살생을·수용하도록행하느니라.” (대문자는 명사,이탤릭체는 동사의 범주에 속하는 단어들을 가리킨다) ‘살생을’ 의미하는 단어는 ‘생명’ 을 뜻하는 프라나(prāṇa)와‘빼앗음’의 아티파타(atipāta)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프라나-아티파타(pra-AN-a=ati-PĀT-a)이고, 여기에 이탈의 기능을 나타내는 탈격 표지-at가 붙어있다. 동사인 ‘멈추고’ 의 의미는 과거분사의 프라티위라타(prati-vi-RA-ta)와 동사인 바와티(BHAV-ati) 두 개의단어로 표현되며, 시제는 미래 또는 현재를 나타낸다. 이에 따라 영어로 번역해보면, 대략‘… will be or is abstained from killing…’이된다. 불살생은 ‘살생’의 산스크리트 단어에 ‘멈춤, Cessation’을 뜻하는 위라마나 (vi-RAM-ana)가 붙어 표현된다.

불투도·불사음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않는다는 불투도(不偸盜)는 ‘투도’의 아닷타-아다나(adatta=ādāna)에 상기한 ‘멈춤’의 단어가 붙은 합성어이다. 투도의 어원적 의미는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의 아닷타(a-DA-D-ta)와 ‘취함’의아다나(ā-DĀ-ana)가 합해져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일’이된다. 불륜과 같은 도덕에 어긋나는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불사음(不邪婬)은 ‘사음’의 카마-미트야-아차라(kāma=mithyā=ācāra)에 ‘멈춤’의 단어가 붙은 합성어이다. 사음의 어원적 의미는 ‘애욕(愛慾)’의 카마(KĀM-a), 형용사 ‘잘못된’의 미트야(MITH-yā),그리고 ‘행위’를 뜻하는 아차라(ā-CĀR-a)가 합쳐져 ‘애욕의 잘못된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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