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설이 살아있는 절 -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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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설이 살아있는 절 -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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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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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 국토를 찾아서, 해남군

어 떤 인연이었을까? 삼천리 반도 끝 이 해남 땅이 천년이 지나도록 삼재가 머물지 못할 땅이 되어 임진란의 영웅 서산휴정 스님의 의발이 모셔지게 된 것은…. 이후로 이곳 해남에서는 소요태능, 편양언기 스님 등 서산대사의 상족들에 의해서 조선 후기 불교가 다시금 활짝 꽃을 피우게 되고 그 법맥이 지금까지 내려와 전체 승가의 8할에 달하게 되었으니 아무리 따져도 그 인연이 깊이는 골수에 사무칠 따름이다.

임진란은 민족사의 비극이요, 불교사에 있어서도 비극이었다.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볼 때 임진란에 절이 모두 소실되었다는 기록을 숱하게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전쟁을 통해서 불교는 억불의 사회적인 통념을 일순간 뒤바꾸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으니 전국에서 일어난 승병의 전과는 관군의 그것보다 눈부시게 찬란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종전 후 일본에 보내는 사신으로 누구도 마다하는 가운데 사명 대사를 뽑아 보냈으니 그 다녀온 성과를 굳이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라를 대표해서 다른 사람도 아니 '스님'이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불교의 위상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임진란에 불타버린 절들이 이후 백여 년 동안 활발하게 중건되고 그 이전에 이미 없어졌던 절들도 이때를 기화로 중창하게 되었다. 사실 절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스님들의 탁발만으로는 가능치가 않다. 나라의 지원 혹은, 지방 관리나 부호들의 출자가 없이는 힘든 것이 중창불사인데 수많은 전국이 사찰이 이때 한꺼번에 불사를 이루었음은 당시의 사회에서 불교의 위상이 일시에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때 해남을 거점으로 불교가 다시 꿈틀거리며 살아나 점차로 인근 강진과 지리산 일대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대둔사는 조선후기 불교를 대표할 만한 12대 종사(楓潭, 醉如, 月渚, 華岳, 雪岩, 喚醒, 碧霞, 雲峰, 霜月, 虎岩, 涵月, 蓮潭)와 12대 강사(萬化圓悟, 燕海廣悅, 雲谷永愚, 懶庵勝濟, 影波聖奎, 雲 鼎馹, 退庵泰瓘, 碧潭幸仁, 錦州福慧, 玩虎尹佑, 朗岩示演, 兒庵惠藏)를 배출하며 당시의 교학과 선풍을 이끌어 나갔다. 이렇게 결집된 힘은 강진의 만덕산 백련사(백련사의 조선시대 8대 종사 - 逍遙太能, 海雲敬悅, 醉如三愚, 華岳文信, 雪峰懷淨, 松坡覺暄, 晶岩卽圓, 蓮坡惠藏)로 또는 땅굴의 미황사로 자연스레 넘쳐흘러 인근에 유배온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시 실학의 대가들과도 교류가 가능하게 하는 숨은 저력으로 내재해 있었다.

답사여행이 일반화된 이후 다산초당을 끼고 있는 강진 백련사나 초의 선사의 유적이 남은 두륜산 대둔사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계절에 상관없이 숱한 인파가 몰려든다. 물론 아무 때고 그 나름의 인상과 감흥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백련사의 경우 아름드리 동백나무에 빨간 동백꽃이 만발하는 이맘때가 적격이요, 대둔사도 일지암 다향(茶香)이라도 훔쳐 맡아보려면 곡우를 조금 넘겨 첫차가 나올 때쯤이 제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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