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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탁발승이 보고 싶다

학창 시절 속리산 법주사에서 열린 창작 교실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곧잘 젊은 스님들과 어울렸다. 삭발과 유발이 섞인 계곡의 담소는 유쾌했다. 그러다 (누가 먼저 제의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야구 경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날 스님 팀에게 무참히 깨졌다. 스님 중에 광속구를 뿌리는 투수가 있었다. 방망이가 헛돌 때마다 투수 스님은 머리통을 만지며 천진하게 웃었다. 그렇듯 친구 같던 스님들이 전혀 다른 얼굴로 우리를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바로 탁발이었다. 스님들이 사하촌에서 밥과 찬을 얻어 돌아오는 모습은 참으로 경건했다. 그날은 마침 장대비가 쏟아졌다. 탁발승들은 일 열로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발우를 품에 안고 천천히 경내로 들어왔다. 지켜보는 우리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때 스님과 우리는 성(聖)과 속(俗)으로 나뉘었다. 음식, 그것도 발우에 담긴 음식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얻어먹는다 함은 얼마나 숭고한가. 지금도 그때의 광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비구는 ‘걸식하는 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얻어먹는 행위에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부처님 계실 때 제자 수보리는 부잣집만, 가섭은 가난한 집만 찾아다니며 빌어먹었다. 두 제자는 나름 깊은 뜻이 있었다. 빈민 출신인 수보리는 부자들이 선근(善根)을 계속 쌓아 다시 타락하지 않도록 하려 했고, 부자의 아들이었던 가섭은 가난한 자를 가엾게 여겨 내세에는 선근의 인연을 짓게 하려 했다. 그렇다 보니 가섭의 발우에는늘 형편없는 밥이, 수보리의 발우엔 좋은 밥이 담겨 있었다. 이때 부처께서 두 제자에 ‘마음이 공평하지 못하다(心不均平)’며 분별심을 내지 말고 부자건 가난한 집이건 차별 없이 찾아가 얻어먹으라 일렀다.

걸식은 비구에게는 하심(下心)을 심고 보시하는 사람에게는 선근을 쌓게 하니 서로 복을 짓는일이다. 뭇사람들에게 음식을 빌어 그들을 위해 복의 씨를 뿌려주는 의식이다. 우리에게도 탁발이란 탁월한 수행이었다. 생명이 발우에 들어 있음이니 빌어먹다 보면 아만(我慢)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성철, 청담, 자운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며 일으킨 봉암사 결사에서도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탁발을 했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임에도 사람들은 스님들을 박대하지 않았다. 자운과 법전이 함께 탁발을 나간 얘기는 참으로 따스하다. 두 스님은 종일 따로 마을을 돌아다니다 해질 녘 공동묘지에서 만났다. 돈과 쌀은 한데 모으고 떡과 과일을 먹은 후 나란히 앉아서 내의를 벗어 이를 잡았다. 잠자리까지 탁발하다 보니 사랑방에서 이가 옮겨와 이를 잡지 않으면 견딜 수가없었다. 공동묘지에 앉아 이를 잡고 있는 탁발승, 생각만 해도 정겹고 평화롭다. 훗날 종정을 지낸법전 스님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발우 하나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면 천하가내 집인 것 같았다. 걱정할 것 하나 없이 마음이 편했다.”
이제 이러한 탁발 광경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간혹 음식점이나 술집에 걸승들이 나타나 목탁을 두드릴 뿐이다. 목숨을 발우에 담는 숭고함은 찾아볼 수 없다. 탁발은 하심을 심는 수행이고, 선근을 쌓는 의식이다. 한국불교에서 탁발이 사라지고 있음은 절집 사람들이 자꾸 높아지려 함이다. 부처님도 무리와 함께 맨발로 밥을 빌어 와함께 드셨음을 잊고 있음이다.

‘ 이때 세존께서는 식사 시간이 되어 옷 입고 바리때 들고서 사위성 안으로 들어가 구걸하셨다. 성안에서 한 집 한 집 차례로 구걸을 하시고 본디 계신 곳으로 돌아와 음식을 드셨다.’
(금강경 제1품)

한 끼 밥을 빌어먹는다는 것이 이렇듯 경건했다. 결국 빌어먹어야 복을 나눠줄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해도 탁발에 담긴 것까지 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빌어먹는다. 권력자도, 서민도, 재벌 총수도, 노숙자도 걸식으로 살아간다. 방식만 다를 뿐이다. 항상 누군가 주는 사람이 있어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영원한 내 것이란 것은 없다. 그때 법주사에서 탁발을 했던 그 스님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탁발이 사라지고 있음이 무엇을 잃고 있음인지 돌아볼 일이다. 요즘 스님들 발우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김택근  bulkwan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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