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탁발승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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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탁발승이 보고 싶다
  • 김택근
  • 승인 2019.07.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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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속리산 법주사에서 열린 창작 교실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곧잘 젊은 스님들과 어울렸다. 삭발과 유발이 섞인 계곡의 담소는 유쾌했다. 그러다 (누가 먼저 제의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야구 경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날 스님 팀에게 무참히 깨졌다. 스님 중에 광속구를 뿌리는 투수가 있었다. 방망이가 헛돌 때마다 투수 스님은 머리통을 만지며 천진하게 웃었다. 그렇듯 친구 같던 스님들이 전혀 다른 얼굴로 우리를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바로 탁발이었다. 스님들이 사하촌에서 밥과 찬을 얻어 돌아오는 모습은 참으로 경건했다. 그날은 마침 장대비가 쏟아졌다. 탁발승들은 일 열로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발우를 품에 안고 천천히 경내로 들어왔다. 지켜보는 우리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때 스님과 우리는 성(聖)과 속(俗)으로 나뉘었다. 음식, 그것도 발우에 담긴 음식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얻어먹는다 함은 얼마나 숭고한가. 지금도 그때의 광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비구는 ‘걸식하는 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얻어먹는 행위에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부처님 계실 때 제자 수보리는 부잣집만, 가섭은 가난한 집만 찾아다니며 빌어먹었다. 두 제자는 나름 깊은 뜻이 있었다. 빈민 출신인 수보리는 부자들이 선근(善根)을 계속 쌓아 다시 타락하지 않도록 하려 했고, 부자의 아들이었던 가섭은 가난한 자를 가엾게 여겨 내세에는 선근의 인연을 짓게 하려 했다. 그렇다 보니 가섭의 발우에는늘 형편없는 밥이, 수보리의 발우엔 좋은 밥이 담겨 있었다. 이때 부처께서 두 제자에 ‘마음이 공평하지 못하다(心不均平)’며 분별심을 내지 말고 부자건 가난한 집이건 차별 없이 찾아가 얻어먹으라 일렀다.

걸식은 비구에게는 하심(下心)을 심고 보시하는 사람에게는 선근을 쌓게 하니 서로 복을 짓는일이다. 뭇사람들에게 음식을 빌어 그들을 위해 복의 씨를 뿌려주는 의식이다. 우리에게도 탁발이란 탁월한 수행이었다. 생명이 발우에 들어 있음이니 빌어먹다 보면 아만(我慢)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성철, 청담, 자운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며 일으킨 봉암사 결사에서도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탁발을 했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임에도 사람들은 스님들을 박대하지 않았다. 자운과 법전이 함께 탁발을 나간 얘기는 참으로 따스하다. 두 스님은 종일 따로 마을을 돌아다니다 해질 녘 공동묘지에서 만났다. 돈과 쌀은 한데 모으고 떡과 과일을 먹은 후 나란히 앉아서 내의를 벗어 이를 잡았다. 잠자리까지 탁발하다 보니 사랑방에서 이가 옮겨와 이를 잡지 않으면 견딜 수가없었다. 공동묘지에 앉아 이를 잡고 있는 탁발승, 생각만 해도 정겹고 평화롭다. 훗날 종정을 지낸법전 스님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발우 하나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면 천하가내 집인 것 같았다. 걱정할 것 하나 없이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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