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불광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kakaostory


상단여백
HOME 월간불광 법문
[명법문] 청주 마야사 현진 스님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사진제공. 마야사

오늘 이 시간에는 행복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 사과를 두 개 가진 사람과 한 개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누가 더 행복하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개를 지닌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명확한 답은 한 개와 두 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맛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과를 지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과를 활용하는 사람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태도를 가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비로소 행복을 향유할 줄 아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향유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오히려 불행이 되기 쉽습니다. 소유하고 있다고만 해서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행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연봉이 얼마냐?’, ‘집이 몇 평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어진 소박한 기쁨을 즐기는 인생이 더욱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큰 산에 걸려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서입니다. 즉, 작은 일에 마음 상하고 사소한 것에 기분이 상합니다. 다시 말해 소소한 일상에 기쁨을 느껴야 행복지수가 상승한다는 뜻도 됩니다. 보잘것없는 조건이나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열등하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린 왕자』를 읽어보면, 친구들을 데리고 왔을 때 어른들이 “너희 집은 몇 층이냐, 크기가 얼마냐?”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친구를 만나면 “너희 집에 장미꽃이 피었니? 담쟁이가 자랐니?” 하며 물어보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른들은 매사를 물질적으로 평가하지만 어린이들은 가치적으로 평가합니다. 모든 상황을 물질로 기준을 삼는 인생은 너무 계산적이고 인정이 없어 보입니다. 돈이나 명예 외에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자잘한 조건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보’라고 표현할 때 그 바보의 어원은 ‘밥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밥만 먹는 사람을 밥보라고 하다가 바보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보라는 단어에는 몸만 챙기는 사람, 경쟁하는 사람, 물질적인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 보면 우리 주변에는 바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신주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런 바보 노릇을 그만하는 첫걸음은 마음 챙기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을 챙기는 사람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독서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마음을 챙기기 전에는 성공이나 재테크에 관련된 책을 보다가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종교와 명상 서적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의 내 행동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가?’ 하는 등의 성찰을 해본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본심과 욕심, 이렇게 두 가지가 존재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욕심인지, 본심인지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욕심이 많지 않았는데 욕심의 영역이 점점 커져서 본심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 우리들 삶의 모습입니다. 고약하게도 욕심이 계속 명령을 내리고 최면을 겁니다. ‘어서 1억을 벌어라, 1억도 부족하니까 10억을 채워라.’ 이런 식으로 명령하니까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심으로 돌아오면 그 욕심의 명령을 거부하기 때문에 더 이상 부족하지 않습니다. 공식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본심이 회복됩니다. 그러면 욕심인지, 본심인지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과거를 곰곰이 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본심은 변하지 않지만 욕심은 변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 20평짜리 집을 마련할 때는 ‘나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게 되면서 점점 마음이 변하여 30평짜리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먹게 됩니다. 이렇게 변하는 것은 욕심에 가깝습니다. 욕심이 다 채워지면 행복하겠지만, 욕심은 또 확대되니까 계속 행복의 기준도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평생 돈 벌고 성공하여도 끝이 없다는 결론이 납니다.

본심으로 돌아오면 경쟁할 필요가 없어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본심을 회복하는 것이 오히려 성공 비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데 욕심을 버리고 나면 얼굴이 밝아지고 고요해집니다. 그러면 면접 점수가 높아지기 때문에 사업도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인 관계에서는 이런 면접 점수가 높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심의 상태가 되면 순위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일등이 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즐기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집중’인지, ‘집착’인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집중은 순수한 몰입이지만 집착은 고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면 현재의 삶이 집착인지, 집중인지를 확인해보는 일도 한 번씩 필요합니다.

욕심이 줄어들면 일에 대한 보람과 흥미가 생기게 되고 아울러 능률도 오르게 마련입니다. 내가 돈을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하는 이치입니다. 나 자신이 삶의 주체이므로 욕망의 그림자를 따라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또한 지금 시대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적을수록 창의력이 증가한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생활을 들여다보면 바쁘고 정신없을 때보다 휴식 시간에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버스를 타고 여행할 때 새로운 생각과 더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욕심이 적어질수록 통찰력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본심이 지시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본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가득 차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도박을 하거나 게임을 즐길 때 오로지 이기려고 하는 그 욕심이 지나쳐서 본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욕심의 주파수보다 본심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여야 실패가 적습니다.

또한 본심에 가까워지면 기쁘게 늙을 수 있습니다. 나이 먹는 일도 성장의 한 부분입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노래했듯이, 인생의 주름을 삶의 과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늙음이나 죽음이 슬프거나 불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에 가까울 것입니다. 왜냐면 본래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죽는 일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 법문을 통해 본심 회복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교학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고(故) 김동화 박사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구하는 바가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구하는 바가 없으면 괴로울 것도 없다.”

우리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본심보다는 욕심으로 살기 때문에 늘 괴로운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다면, 내가 지금 바라거나 구하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닌지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법문. 현진 스님

청주 마야사 주지. 이두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0년 사미계를 1988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포교국장, 법주사 수련원장, 청주 관음사 주지, 월간 「해인」 편집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삭발하는 날』, 『행복은 지금 여기에』,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외 다수의 책을 냈다.

현진 스님  bulkwang_c@hanmail.net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