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여자들끼리 엉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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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여자들끼리 엉켜 사는 삶
  • 구훈모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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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가을이 되자 등산차 단풍보러 가자는 친구도 많고 MT(Membership Training)며 친목모임들의 야외행사들이 많다. 사실 안채에 갇혀 서로 집안 여자들끼리의 방문만 용인되던 옛날 여성들도 봄이 오면 경치 좋은 산과 들로 화전놀이 한 번쯤은 갔었던 것 같고, 언문이라도 깨친 양반집 아낙네들은 가사를 지어 읊는 멋도 부릴 줄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들 중에는 옛날 집안 여성들의 가사 두루마리를 보관하고 있는 분도 있다. 부처님을 믿는 불교 신도들이라면 친척 또는 이웃사촌끼리도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머리에 이고 먼 절 길을 걸어 가고 오면서 맵고 짠 그간의 시집살이 사연을 서리서리 풀어내며 가슴후련한 시간을 가져 볼 수도 있었을 게다.

'여자들끼리'는 참 묘한 데가 있다. 시집살고 살림살며 애낳고 살아가는 서러운 사연들이 내남없이 다들 있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 할 시간만 되면 수다 사이사이에 여자시름이 풀려 나오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곧잘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눈물이 흔해서가 아니라 자신 속에 쌓여 있는 이야기를 상대의 입을 통해서 들을 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여자들이 집밖에서 자는 일은 언감생심 엄두도 못낼일이었다. 그나마 친척집에 잔치나 제사 또는 상이라도 나야 일을 빌미삼아 어쩌다가 그 집에서 잘 수 있을 뿐이었다. 그외에는 아이이거나 나이먹어 사회적으로 이미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늙은 여자들일 경우만 그나마 자유가 주어졌다고 보여진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고 어머니도 우리도, 그리고 아직 많은 우리의 딸들이 같은 장벽 속에 갇힌 채 살고 있다. 이유인즉 '여자는 밖으로 내어 돌리면 깨진다'는 것이다. 여자는 깨어지기 쉬운 유리그릇 또는 꽃, 내 것 네 것 등 소유가능한 물건쯤으로 여겨져 왔다. 오죽해야 가정주부들은 남편의 허락없이는 친정에서조차 마음대로 머물 수가 없었겠는가 말이다. 여대생들이 가족생활 가운데 부모에 대한 가장 큰 불만중의 하나가 귀가시간과 친구들끼리의 여행에서 허락을 받는 일이다.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을 '깨질 위험이 있는 유리잔'으로 보는 생각은 똑같다.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순결과 정절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의 바깥출입과 자유로운 여행을 가로막는 장애이며 족쇄로 작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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