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법문] 서울 반야사 원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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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서울 반야사 원욱 스님
  • 원욱 스님
  • 승인 2019.02.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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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성취하는 빛나는 길

오늘 동학사에서 처음으로 행자의 삭발을 지켜봤 습니다.

은사인 제가 행자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세 번 자르자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두 분의 강사스님들 이 따사롭고 다정한 느낌을 손끝에 담아 순식간에 삭발이 끝났습니다.

삭발을 마치고 황금빛 행자복을 입고 나타나 나름 비장한 얼굴로 어른스님들께 첫 절을 올리는 데 그 모습이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한 마리 노란 병 아리 같았습니다. 미래의 부처님 되실 분이 탄생한 것이니 자비와 인욕으로 정진하라는 어른 스님의 말씀을 듣던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오랫동안 잊 지 못할 것 같습니다. 행자는 법혜法慧라는 이름으 로 부처님 품안에서 새 인생을 그렇게 시작했습니 다. 처음 은사가 된 저도 법혜가 어려운 첫 걸음을 당당하고 환희롭게 나아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과일년뒤에반드시스님이될수있도록이끌어 야 하는 은사의 마음이 새싹처럼 싹텄습니다. 저 역 시 똑 같이 40여 년 전에 경험한 일입니다. 20살짜 리 당돌한 아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주셨던 은사스님과 모든 인연 있는 스님들을 생각하니 가슴 뭉클해지며 스승의 역할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래 전 행자의 삭발을 담은 영상에서 머리카락 이 잘려나가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애잔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실 상 삭발을 하는 이나 삭발을 해주는 이는 묘한 설 렘과 비장함으로 삭발식을 치룹니다.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나면 보드라운 머리피부가 손끝을 스치 지만, 30분쯤 지나서 다시 만져보면 금세 까실까

실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육체 의 한 부분인 머리카락이 이렇게 매 순간 자라듯 이 정신의 한 부분인 번뇌와 망상도 매 순간 일어 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번뇌 망상 은 나를 힘들게 하는 어둠의 근원입니다. 번뇌가 어둠이면 밝음은 행복입니다. 번뇌처럼 순식간에 자란다고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부릅니다. 번뇌가 어둠이면 행복은 밝음이니 무명초를 자르 는 것은 행복을 기약함과 같은 일입니다.

이렇게 길면 깎는 것을 반복하는 번뇌와의 공존이 시작된 것입니다. 번뇌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는 의미로 ‘번뇌즉 보리煩惱卽菩提’라 합니다. 부처님처럼 출가 하는 이들의 삭발은 단순히 과거의 삶을 단절한다 는 의미보다, 매 순간 자라는 번뇌를 지켜보며 번 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탈의 삶을 살겠다는 의 지입니다. 번뇌를 소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 로 행복의 마음입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모든 번 뇌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바로 조화와 공존이며 이것이 바로 공성空性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을 대하는 나의 생각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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