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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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回歸)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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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시심

회귀 (回歸)의 계절이다.

석양에 낙조가 한껏 찬란하듯, 대지(大地)에 귀환의 자태 또한 그지없이 농염(濃艶)하다. 올 때는 그토록 요란해서 산야가 모두 진동하더니, 갈 때는 고요히 오직 정열을 다해 마지막 그 소식 전하는가.

나타나서 사라지기까지 실로 참담한 인고의 세월이었다. 봄바람 가을비에 그간 얼마나 시달렸던가. 찌는 더위와 임림취우(霖霖驟雨)를 잘도 참아 넘겼다. 오직 농사(農事)의 보람을 위해, 이렇듯 한 세상을 덧없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무언가 다해야 했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그것대로 방일 없이 힘 기울여 다해야 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요, 곧 그들의 삶이었다.

일목일초가 이렇듯 제 구실을 다해 하나의 총림이 존재한다. 울창한 삼림과 무성한 숲은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로 시작한다. 그 속에서도 나고 죽는 윤회가 있고, 오고 가는 때가 있다. 이 속에도 인연의 정연한 질서가 있다. 정숙하게 수순하는 그 모습, 우리의 사표가 되고도 남으리.

어느 하나도 남을 닮으려 않고 제모습에 자긍을 느껴, 오직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천하에 드러낼 뿐. 비록 우리의 눈에 하찮고, 빈약하고 왜소할지라도 나름대로 긍지와 자존이 있고 유연(悠然)과 자족을 갖춘 초목들의 그 고귀한 맵시.

찬서리로 삭풍을 예감한 그 날부터 떠날 준비에 바쁘다. 이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일이 남아 있다. 그간의 삶을 청산하는 회고의 전시가 그것이다. 저 백두산에서 이 한라산까지 순회 전시를 펼쳐 보인다. 설악산과 내장산의 그 잔치는 만인 앞에 보시하는 가장 큰 공양이 될 것이다.

봄철의 꽃보다 더 붉은 서리 속의 현란한 단풍은 어제까지 살아온 결정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한바탕 살고 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더불어 떠나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간 가꾸어 왔던 전부를 주고 가는 것이다. 홀가분하게 빈손으로 가기 위하여.

찬서리에 으스러뜨리고 삭풍에 날려 정처 없이 자취 없이 한 잎 두 잎 떠나 보낼 것이다. 미련 없이 아낌없이 돌려보낸다. 남김없이 떠나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냉염(冷艶)한 알몸이 될 것이다.

꽃이 질 때 그렇듯이 잎이 질 때도 그러해야 한다. 시든 꽃송이가 꽃나무가지에 철없이 매달려도, 마른 잎이 나무 가지 가지에 한스레 늘어져 있어도 보는 이의 시선을 역겹게 한다.

그렇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라질 뿐이다. 죽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라질 뿐이다. 꽃이 필 때 떠나갈 약속이 이미 되어 있었다. 잎이 필 때도 그러하였다. 이처럼 떠나갈 때도 다시 만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기에 헤어지는 아쉬움을 다시 만나는 기쁨으로 대신할 수 있다. 가는 이를 좇지 않아도 되고, 오는 이를 막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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