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선 철도를 따라 천안, 온양을 지나 나즈막한 신장고개를 넘어서면 또다른 충청도 땅 내포가 나온다. 원래 내포(內浦)란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뻘 가운데 만을 끼고 있는 곳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다. 그래서 해상교역이 활발했던 금강유역을 더 빈번히 내포라고 부르지만, 아산만과 천수만의 바다를 위 아래에 두르고 있는 이곳도 옛부터 부르는 이름이 '내포'다.

예산과 서산, 당진, 홍성, 보령으로 이루어진 이 내포 지역은 대대로 난세의 위인이 나온다는 소문이 전해져 온다. 실제로 근세에만도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서 토정 이지함,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윤봉길 등의 헤아리기 힘들 만큼의 뛰어난 인물이 나기도 했다. 또 내포의 중심에 자리한 덕숭산에서는 경허, 만공 선사의 지도로 근세불교계의 거장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으니 불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문이 소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 내포 지역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동네는 아무래도 홍성이다. 홍성은 사납지 않은 천수만 바다가 길게 앞에 드리우고 그 건너에는 안면도가 방파제처럼 놓여있어 천혜의 어업지대다. 또한 남쪽의 오서산과 북쪽의 용봉산 사이로 펼쳐진 광활한 평야가 예당평야에까지 이어져 풍부한 곡창을 이룬다. 내포의 중심인 홍성은 자연히 오천항이나 광천항에서 올라오는 해산물과 예산, 당진의 곡식이 집결되는 곳이다. 여기에 청양쪽 호서 산간지방에서 특산물까지 실어 나르고 있으니 조선조 말 충청도를 홍충도, 충홍도, 공홍도 등으로 바꿔 부르며 홍성에 관찰사영을 두었던 까닭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내포 지역에서는 태안반도 끝에서 중국의 산뚱반도까지의 거리가 동래에서 일본에 가는 거리보다 가깝게 여겨질 만큼 중국과의 교역은 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선진문화의 척도였던 불교의 유적과 유물도 숱하게 남아있다. 그 가운데 마애불은 이 지방에서 비롯된 신앙양식이었던 듯 많은 수가 밀집되어 나오는데 위로는 백제때의 것에서부터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바위부처님이 보인다. 오랫동안 불교적 전통이 배어있긴 해도 바다에 인접한 곳이기에 왜구의 침입도 만만치 않았으나 돌로 모신 성보 외에 다른 유물은 거의 사라져버려서 마애불이 더 돋보이는지도 모른다.

홍성을 찾은 때는 밀물처럼 아침 저녁으로 번갈아 찬기운이 느껴지는 가을 초입이었다. 얼마전 큰 비에 다리가 주저앉은 곳, 둑방이 터진 고, 산비알이 흘러내린 곳이 자주자주 눈에 띄었다. 논에도 자갈과 흙무더기가 뒤덮혀 벼이삭이 목만 내놓고 있거나 아예 쓰러져 있는 곳이 많았다. 추수를 앞두고 뿌듯해야 할 농심이 억장 무너지는 한숨과 원망으ㄹ 바뀌었을 것을 생각하니 이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다니는 심정이 죄스럽다. 농부들에게는 한 해 농사를 망친 것보다 대대로 내려온 삶의 텃밭이 망가져 버린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심하다고 했다.

처음 차에서 내린 광천읍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사람의 가슴까지 물이 찼었다고 한다. 군데군데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도로를 따라 결성면소재지를 지나 고산사까지 가는 동안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푸르렀다. 큰 길에서 절까지는 가파른 산길이었다. 축대가 무너지고 도로가에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가 넘어져 도로를 막았던 흔적도 보였다. 고산사도 엄청난 천재지변을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