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나를 흔들다] 단주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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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나를 흔들다] 단주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 이지숙
  • 승인 2018.08.0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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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박혜상

내 손목은 단주가 늘 바뀐다. 한 알 한 알 정성껏 굴리고 굴리어 손때가 켜켜이 묻어야 하는데, 내 손에 들어온 것이 인연이라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라고 슬쩍 빼내어 선심 내듯 단주를 드린다. 처음 가보는 절은 기념이라 구입하고, 예뻐서 사기도 하니 단주의 애착이 없는 것인가. 그 순간 기쁘게 마련된 단주는 마음 짠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손목에서 쉬이 벗어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목을 벗어난 단주는 며칠 못가서 어느새 다른 새것으로 내 손목에 있다. 부처님이 늘 곁에 계시는 것처럼.

외할머니는 몇 년 전 백수를 하고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길고 넓은 외갓집 대청마루가 생각난다. 시원하면서도 언제나 윤기가 났다. 부지런하신 외할머니의 흔적이다. 외가에 들어서면 커다란 감나무가 서 있었는데 감꽃이 피어 떨어지면 외할머니는 그것을 하나하나 주워 목걸이를 만들어 주셨다. 감꽃이 동그랬으면 염주로 굴릴 텐데. 외할머니는 긴 머리칼을 참빗으로 곱게 빗고는 꼼꼼히 닿아 비녀를 꽂으셨다. 화려한 꽃무늬 옷보다 흰옷을 정갈하게 입으셨고, 가끔 우리 집에 오실 때는 가방에 「천수경」을 넣고 오셔서 놀기에 바쁜 나를 불러 읽어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보다 외할머니께 먼저 부처님이 계심을 배운 것 같다. 옆에 있는 나를 향해 작은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일러주셨 고, 남에게 아픈 말은 되돌아오는 것이니 절대로 삼가라고 알려 주었으며, 힘든 사람과는 물 한 사발도 나눠 마셔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염주를 돌리시며 「천 수경」을 들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밀어가 ‘신묘장구대다라니’였나 보다. 어렵다며 얼버무리며 넘겼던 그 글들. 「천 수경」을 외우고 계셨던 외할머니는 아시면서도 나를 불자로 이끄시려고 가만히 기다리셨나 보다. ‘부처님을 믿어라’고 한 번도 말씀하신 적 없지만, 지금 내가 불자가 된 것은 순전히 외할머니 덕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여름방학이 떠오른다. 부산 가까운 양산이라는 곳에 외할머니 친척분이 주지스님으로 계셨다. 스님께서 건강이 좋지 않아 하는 수없이 외할머 니께서 그곳 암자에 기거하며 스님의 건강을 위해 몇 달을 살았다. 아주 무덥던그 여름날, 엄마는 나와 함께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칡넝쿨이 앞을 가리는 그 암자를 걸어갔다. 아마 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긴 시간 동안 걸음을 옮긴 날로 기억한다. 날씨는 덥고 무거운 짐을 들었으니 길이 아득하였지 싶다. 끝도 없는 그길을 가면서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엄마에게 몇 번을 물었는지 모른다.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외할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칡넝쿨과 무성한 숲을 헤치며 길을 간 기억은, 간혹 내가 힘들 때 지금도 꿈속에서 나올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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