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기림사 약사전 여래헌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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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기림사 약사전 여래헌다도
  • 강호진
  • 승인 2018.05.0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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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이름뿐
사진 : 최배문

2013년 8월 16일, 나는 능현能玄이라는 승려가 쓴 한 권의 고서를 보게 되었다. 내게 책을 보여준 이는 일본의 골동품점을 들락거리며 한국사찰의 허드레 유물 따위를 구입한 뒤 국내사찰에 되파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장사꾼이었다. 그가 내민 것은 『함월산기림사연기含月山祇林寺緣起』라는 책이었는데, 말미에 ‘숭정기원후세재 술신년 3월 하순에 기림사 승려 능현이 쓰다(崇禎紀元後歲在戊辰三月下澣 祇林寺僧能玄記)’라고 적혀 있었다. 연대는 인조 6년(1628년)이었고, 1740년의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보다 112년이나 앞선 기록이었다.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책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나를 몹시 들뜨게 했다. 무엇보다도 놀랐던 것은 기림사 창건의 비밀을 풀어줄 내용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더니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책을 움켜쥐고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후 책과 관련한 어떠한 언론보도나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책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그때의 짧은 기억에 의지해 세상에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기림사 창건의 비밀을 처음으로 밝히려 한다. 바라건대 이 이야기를 준비하는 나의 손끝이 끝내 침착해주기를 …. 

명민한 독자라면 눈치를 채고도 남았겠지만, 위 문단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서두 부분을 차용해 쓴 허구이다. 『함월산기림사연기』라는 책은 지어낸 것이지만,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은 실재한다. 이처럼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의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팩션faction이라 부른다. 왜 갑자기 팩션인가? 경주 기림사 약사전의 벽화를 읽기 위해선 팩션적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인석보』, 오종수五種水, 오색화五色花, 「이공본풀이」에 이르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나고 겹치는 도상途上에서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서부터 사실인지 종잡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의 벽화는 기림사 약사전 내 좌측 벽에 위치해있다. 한 승려가 마지(摩旨, 밥)를 담은 불기佛器와 차를 담은 다기茶器를 쟁반에 받치고 붓다와 그의 제자 아난을 향해 다가서는 그림이다. 승려는 버선발인데 붓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뛰쳐나온 모습을 포착한 것인지, 아니면 법당에 들어선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는 모습인지 알기 어렵다. 붓다의 정수리에선 우유 빛 광명이 뿜어져 나와 승려를 감싸고 있는데, 마치 공양의 공덕으로 인해 내세에는 부처가 되리란 수기受記를 내리는 듯 보인다. 지금은 가사로 덮여 있는 붓다의 왼쪽 발은 채색을 뚫고 올라와 희미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고, 필선이 겹치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개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벽화가 17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이란 일각의 주장을 그대로 믿긴 어렵다. 흔히 이 벽화를 여래공양도라 부르는데 평범해 보이는 그림은 의외로 전례를 찾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다. 재가자 아닌 승려가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는 그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균열이 발생하고 그 틈을 기림사의 창건설화가 슬며시 채우면서 벽화에 새로운 이름이 부여된다. 벽화는 여래공양도가 아니라 ‘여래헌다도如來獻茶圖’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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