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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명법문] 안동 보경사 주지 오경 스님정법과 사법
사진:최배문

| 정법, 인과의 법칙

우리가 불교를 말할 때 정법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정법의 반대를 사법이라고 말하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정법이고 무엇이 사법 일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진리, 즉 사실에 부합하는 것을 정법이라 하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사법이라 합니다. 그런데 경전에 의하면, 정법이 라고 할 때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인과의 법칙입 니다. 인과를 인정하면 정법이고 인과를 부정하면 사법이지요. “삿되다, 사견이다, 사법이다” 하면 인과를 부정하거나 잘못된 인과를 주장하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른 인과를 밝혀내려고 노력하고 바른 인과로 세상을 설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정법입니다.

파사현정 破邪顯正 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사견과 사법 등 삿된 것을 깨트려 바른 것을 드러낸 다는 이 말은 진리를 드러내는 불교적 논리이자 방식입니다.

불교는 사상적으로 보면 관용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사실에 부합 하지 않는 잘못된 생각을 철저하고 논리적으로 깨트려 바른 법을 드러내고, 그 바른 법을 따르도록 유도하여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과 안락과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인과를 부정한다는 것은 과학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과학이란 어떤 조건이나 원인 하에서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입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발달하지 못하였을때 인류는 대부분 그것을 신으로 설명하려 했습 니다. 그러나 아직 어떤 현상이 어떤 인연들에 의해서 발생하는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과를 벗어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 므로 세상일을 인과로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여 인과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이세상 모든 일들은 어떤 원인들, 즉 조건들에 의해서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모든 법은 연기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부터 모든 자연현상, 사회현상, 인간의 길흉화복 등 모든 세상사들은 신의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과관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일절대적인 신은 필요하지도,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 인간들은 신을 믿고 인과를 부정하려는 식으로 행동할까요? 그 첫 번째 원인은 현상의 인과를 볼 수 있는 힘, 즉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지몽매함 때문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옛말에 ‘공 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공짜를 좋아합니다. 행운을 바랍니다. 욕심 많은 중생들은 백만 원어치 일을 하고 백만 원을 버는 것은 좋아하지 않고, 만 원어치 일을 하고 백만 원을 버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신에게 빕니다. 종교를 믿고, 신을 찬양하고, 복을 달라고 구걸합니다. 왜 그럴까요? 쉽기 때문입니 다.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은 노력하지 않으니 쉽습니다.

우리가 종교라는 이름하에 사용하는 많은 말들이 우리의 이러한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 다. 신의 축복, 은혜, 은총, 기적, 가피, 신통, 복음 등등. 신을 믿기만 하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고 나쁜 일이 생기면 반성하지 않고 신의 뜻이라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인과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릇된 믿음이고 그릇된 방법입니다.

정법인 불교는 이것들을 부정합니다. 복은 빌어서 받는 게 아니라 지어서 받는 것입니다. 복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복을 많이 짓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과의 원리는 당장 나타나지 않기에 인과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없는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은 인과를 의심합니다. 오늘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내일 당장 사과가 열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만큼 성장할 시간과 좋은 토양과 따뜻한 햇볕과 적당한 수분과 거름을 공급했을 때 열리죠. 꽃이 피고 지고 어린 열매가 맺히고 적당한 수확의 날이 되었을때 사과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인선과 善因善果 악인악과 惡因惡果 , 콩 심은데 콩 나고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인과의 법칙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가시나무를 심어놓고 사과가 열리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을 범해 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먼저 인과를 믿는다는 의미로 쓰여야 합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이 부처님을 나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신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인 진리, 기본적으로 인과를 믿고 그것에 의거 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해야 합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그 사람의 진정한 생각은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행동이 그 사람의 진정한 생각이고 믿음입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즉 인과를 믿는다는 것은 절대로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언제나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공짜를 바라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은 자업자득 自業自得 이므로 자
기의 처지에 불평불만하지 않고 자기향상을 위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 정법을 믿고 행하는 진정한 불자

불교는 지혜의 종교,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즉 진리 추구의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가 자기들이 주장하는 것이 진리라고 하면서도 믿음을 강조합 니다. 진리, 즉 사실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관찰을 통해서 확인해서 알아야 할 문제입 니다. 그래서 진리를 말하려면 진리를 알 수 있는 힘인 지혜와 진리를 아는 깨달음이 강조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존재의 실상인 인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된 인과를 주장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사법이라고 합니다. 일부 그릇된 종교관을 가진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믿으면 구원 받고 천국 간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사탄이 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과를 부정하는 것이거나 그릇된 인과를 주장하는 것으로 사법이라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과 고통이 사라지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과는 전혀 인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부 다른 종교인들을 말했지만,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불자들도 사법으로 부처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경계해야 합니다. 불자들이 절에 와서 예불하고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리면 복을 받을까요? 정말 염불을 하거나 주력을 하면 모든 액운이 사라지고 좋은 일들이 생길까요? 자신이 행하는 행위와 바라는 결 과가 정말 인과관계가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을 또 다른 절대적인 신으로 믿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신행을 단순화해서 방편으로 부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염불을 하면 좋은 일들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을 모두 사법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방편은 언제나 정법에 근거해 있어야 합니다. 정법에 근거해 있지 않은 방편은 더 이상 방편이 아니라 사법이며 사기입니다. 즉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의 근간인 인과의 법칙을 믿어 악행을 하지 않고 선행을 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여 끊임없이 새롭게 발원한다는 의미여야 하며, 염불을 한다는 것이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번뇌와 욕심을 제거하여 자비심을 증장시키는 행위여야 합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쓰는가에 따라서 정법일 수도 있고 사법일 수도 있습니 다. 어떤 방편이라도 정법 위에 기초한다면 그 방편이 모든 것들을 다 풀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습 니다. 앞뒤 다 자르고 그것만 하면 만사형통한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법입니다. 정법은 다없어지고 방편만 남아있으면 삿된 것이 됩니다. 우리 불자들은 끊임없이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생각하고 인과를 생각하면서 삿된 견해와 행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쉬운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가야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법문. 오경 스님
안동 보경사 주지. 경북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1988년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 송광사 승가대학과 실상사 화엄학림을 졸업했다. 제방선원에서 20여 안거를 성만했으며, 서울 법련사 주지와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를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정해학당 원장을 맡고 있다.

 

김우진  kimwj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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