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스님이 본 유교] 하늘과 심법과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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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스님이 본 유교] 하늘과 심법과 공부
  • 권서용
  • 승인 2018.03.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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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총 64장으로 이뤄진 유가귀감 통해 유가사상 핵심 해석

| 하늘 天

유가의 창시자 공자 (기원전, 551~449) 가 아끼는 수제자 안회 (기원전, 521~491) 의사망으로 식음을 전폐하며, 사흘 밤낮을 울면서 “하늘이 나를 버렸다(天喪汝) ”라며 원망한 하늘. 『논어』 「팔일八佾」에서 “완손자가 ‘아랫목 귀신에게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부엌 귀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한 말은 무슨 뜻인가 묻자,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子曰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라고 답한 공자의 하늘. 『맹자』 「진심盡心」에서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자는 자기의 본성을 알고, 자기의 본성을 아는 자는 하늘을 안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卽知天矣)”라며 진심盡心에서 지성知性으로, 지성에서 지천知天으로 이어지는 하늘. 민본사상의 효시가 되었던 “백성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라고 했던 맹자의 하늘. 이 ‘하늘’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서산의 유가사상 이해의 핵심이다.

서산의 『유가귀감儒家龜鑑』은 모두 64장으로 구성되는데, 그 첫머리인 1장에서 “공자는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라고 하였고, 동중서는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왔다’라고 하였으며, 채침은 ‘하늘이라는 것은 마음이 말미암아 나온 곳을 높여 부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들이 말씀하신 하늘은 주염계가 말한 ‘중심 없는 궁극이면서 궁극적 중심(無極而太極)’임을 일컫는 것이다”라며 하늘을 제시한다. 아울러 공자와 동중서(중국 한무제 시대의 유학 자) 그리고 채침(?~?, 조선 중기의 문신)이 말한 하늘(天)을 서산 휴정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주렴계(1017~1073, 중국 북송 유교사상가)의 말로 재해석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나 자신의 실존에 관한 존재론적 물음의 근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나의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가치 론적 물음의 근원인 ‘하늘’을 ‘무극이태극’ 즉 ‘중심 없는 궁극이면서 궁극적 중심’이라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렴계는 왜 ‘무극이태극’이라는 말이 안 되는 말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무극無極 을 말함으로써 ‘나의 실존의 궁극적 근원에 대한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무한소급의 허물을 막기 위해서다. 또 태극太極을 말함으로써 다종다기多種多岐하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만물의 존재· 생성·변화가 아무 것도 없는 무(無, nothing)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궁극적 중심이라는 유(有, 太極)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무극이태 극’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구사했던 것이다. 결국 서산에게 ‘하늘’은 ‘무극이 태극’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서산은 특히 ‘하늘’을 ‘마음이 말미암아 나온 곳을 높여 부른 것’이라는 채침의 해석에 주목하여 그의 『서전』 서문을 『유가귀감』 2장에서 인용한다.

“채침은 서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정미한 마음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실로 중을 잡아라(精一執中)’는 요·순·우 임금이 서로 전한 마음의 법이요, ‘중심을 세우고 궁극을 세워라(建中建極)’는 상의 탕왕과 주의 무왕이 서로 전한 마음의 법이다. 덕德이라 하고 인仁이라 하며 경敬이라 하고 성誠이라 한 것은, 말은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이니 모두 마음의 오묘함을 밝힌 것이다. 아! 마음의 덕은 너무나 융성하도다.”

신화시대의 전설적 성군인 요임금이 하늘의 명을 받아 순임금에게 전한 ‘진실로 그 중을 잡아라’(允執厥中)라는 통치이념과 순임금이 하늘의 명을 받아 우임금에게 전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미하니, 정미한 마음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실로 그 중을 잡아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통치이념, 아울러 인문시대의 위대한 군주인 은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이 하늘의 명을 받아 서로 전한 ‘중심을 세우고 궁극을 세워라’라는 통치이념은 바로 하늘의 마음이자 요·순·우·탕·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心法 이라는 것이다. 이 마음의 오묘함을 표현하기 위해 성인들은 덕·인·경·성이 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고대의 성군이 전한 심법은 다시 공자와 맹자로 이어진다. 서산은 『유가귀감』 3장에서 “중용의 성性, 도道, 교敎이 세 글자는 또한 이름이 다르지만 내용은 같아서 그 속에 본체와 작용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것은 공자와 맹자가 서로 전하고 받은 심법이다”라고 기술한다. 여기서 ‘중용의 성·도·교 세 글자는 공맹이 서로 전하고 받은 심법’이란 하늘이 명하여 인간에게 부여한 신성한 능력인 성性과 이 신성한 능력을 따르는 도道, 이 도를 닦는 교敎 모두가 추상적인 이법理法이 아니라 공맹이 전수한 주체적인 심법心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서산이 하늘과 하늘이 통치자에게 명령한 통치이 념인 정일집중精一執中 과 건중건극建中建極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부여한 성性, 도道, 교敎 모두를 추상적 이법이 아니라 주체적 심법으로 해석한 까닭은, 나의 마음과 본성이 그대로 성인이며 군자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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