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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부처, 마애불]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연꽃에 앉은 미륵부처님을 만나다
사진:최배문

보은 법주사로 가는 길은 편안한 자동차 여정이 되어 주말이면 원색 등산복 차림의 행렬이 속리 산을 찾는다. 법주사는 진리 (法) 가 머물러 있는 곳(住) 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진리를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는지 절로 들어가는 사람보다 산으로 가는 행렬이 더 길다. 디지털시대에 법에 대한 관심은 옅어지고 법보다 몸이나 스마트폰이 갖는 감각과 기능을 따라가는 일이 더 많아진 듯 산속에 서도 스마트폰을 움켜잡은 채 걷고 있다. 스마트폰 속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듯하지만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행복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오리 五里 숲길을 걸어 수정교를 지나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면 평탄한 대지에 크고 작은 전각들이 늘어서 있다. 그 속에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과 거대한 입상의 금동 대불이 등대처럼 서 있다. 전자의 5층 팔상전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기리는 기념탑이라면, 후자의 금동미륵대불은 이곳이 미륵의 땅이라고 선언하는 신앙적 상징이다. 그리고 멀리 가까이 법주사를 옹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산들이 한눈에 이곳이 복된 땅임을 알게 한다. 마애불은 금강문 왼편 사리각 옆 거대한 바위 (추래암) 에 있다.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불의좌상 (보물 제216호) . 오른쪽 암벽에 새긴 활짝 핀 연꽃 위에 앉은 부처 님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 倚像 이다. 6.18m 높이의 대불로 높지 않은 머리에 포도송이 같은 둥근 머리카락이 새겨져 있고, 머리 중간에는 반원의 머리장식 (繫珠) 이있다. 둥글고 넓은 얼굴은 균형 있게 이목구비를 갖추었고 이마 중간에는 둥근 점 (白毫) 이 있다. 오뚝해야 할 코는 콧등이 납작하고, 볼륨 있는 눈은 위로 치켜떠 있어 날카롭게 보인다. 인중은 짧고 말을 할 듯 윗입술이 올라가 있으며, 넓은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며 무표정한 모습이다. 두툼한 세 줄의 목주름이 있어 얼굴 중심의 비만한 모습을 만들고 있다.

얼굴과 어깨까지는 약간 높은 돋을새김으로 새겼고, 나머지 불신은 더 낮고 평평하게 만들었 다. 각진 어깨, 내려진 양팔, 평평한 가슴, 가슴과 배에 올린 양손, 손과 손가락 등을 표현하면서 그주변을 파고들다 보니 움푹 팰 수밖에 없는데 역설적으로 드러난 형태는 평면적이다.

가사 (法衣) 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입었다. 옷 주름은 신체 부위에 따라 밀집되기 도, 성글기도 하다. 그 가운데 큰 주름은 가슴 아래에서 두 다리 사이로 큰 U자 모양으로 흘러내 리고 있다. 수평으로 벌린 허벅지는 전혀 볼륨이 없다. 연잎에 내디딘 양다리는 굵기도 다르고 그사이의 옷 주름은 비대칭이다. 특히 잘록한 허리는 얼굴 폭보다 좁아 정상적인 인체 비례를 넘어 있다. 개미허리로 만들어진 삼각형의 상체는 볼륨 없이 평면이고, 잘록한 허리와 하반신은 더욱 날씬하여 크고 비만한 얼굴과 대비된다.풍요로운이 시대에 뚱뚱한 몸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불상 앞에서 열심히 기도한다면 아마도 그의 소망을 들어주시거나 위안을 주실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의자에 걸터앉은 듯한 넓적다리 부분은 짧아 보이고 아래로 늘어뜨린 종아리와 발목은 가늘어 보인다. 발가락은 생동감이 있다. 미륵불이 앉은 연꽃은 유연한 선과 예리한 면으로 평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풍성하고 생동감이 있다. 수인은 설법을 하고 있는 손갖춤 (轉法輪印) 으로,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마주하며, 왼손은 가슴 아래로 내려 엄지와 약지가 맞닿을 듯하다. 마애불 몸 전체를 보면 볼륨과 매스 mass 가빈약하고, 형태는 도식적이고 비사실적으로 표현 되어 있어 조각이라기보다 한 폭의 불화를 연상케 한다. 이 마애불의상의 자세나 손가짐으로 볼때 ‘아미타불’로 보는 이론 異論 이 있긴 하나, 법주 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법상종의 중심사찰로 면면한 역사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미륵불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 불상은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을 이 땅으로 모신 미륵하생신앙의 염원을 연꽃에 앉은 미륵불로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마애불을 전통적인 미의식에서 살펴보면 자연의 바위 면에 불보살을 도드라지게 조각하기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평면의 존상을 새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림 같다는 것은 명암대비가 뚜렷한 이미지를 갖기보다 바위와 불상이 일체화된 불상을 조성했다는 의미다. 표현적인 면에서 입체감을 뚜렷하게 해 실재감을 강조하 기보다 고요하면서 평온한 선적인 형태를 선호한 것이다. 거대한 바위 면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목조로 기둥과 지붕을 가진 전각을 짓고 그 아래에 촛불을 밝혀 예경하는 부처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바닥에서 비쳐지는 빛을 받은 존상은 더욱 평면적인 가운데 고요하고 평온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진:최배문

오늘의 조형으로 본다면 평면적인 이미지를 추구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는 볼륨이나 명암이 두드러진 형상이 아니라 낮은 면과 선 중심의 평면적 형태를 갖는다. 따라서 이곳 법주사 마애불은 그러한 미의식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마애여래의상 앞의 바위에는 민머리에 눈을 내리 감은 듯한 인물이 보주를 들고서 동쪽을 향해 앉은 마애불이 있다. 마애지장보살상이다. 상은 선과 면으로 얇게 조각을 하였는데 주로 인물 윤곽 선을 남기고 배경을 낮게 하여 얇은 판을 오려 붙인 듯 평면적이다. 상의 전체 높이가 3m가 넘지만 디테일은 알기 어렵다. 대좌에 앉은 채 오른발 은 내리고, 왼발은 반가부좌 비슷한 자세를 취한 유희좌 같다. 상은 앉은키가 작고, 내린 다리 부분도 짧아 보인다. 그리고 내린 발이나 보주를 든손의 크기도 작다. 민머리이며, 얼굴은 옆머리가 크고, 평면적인 긴 코와 작은 입, 감은 듯한 가는눈 등에서 어린이 같은 비례와 인상을 준다. 어깨는 둥글며 상체는 얕은 양감이 느껴진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올려 두 손가락을 구부린 손갖춤인 설법인 說法印 인 듯하고, 왼손은 배 부근에서 보주를 들고 있어 지장보살로 이해된다. 어린이 같은 비례, 상호의 표현과 옷자락의 모양으로 미루어 마애여래의상과 동시대인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마애미륵불 바위 안쪽의 암벽에는 여덟 명의 사람, 여섯 마리의 소와 세 마리의 말을 면각과 선각으로 새긴 작은 조각이 있다. 법주사 창건연기 마애조각이다. 상의 표현은 얕게 바위 면을 쪼아 면으로만 형태를 드러낸 면각의 부조와, 바위 면에 그린 선 따라 새긴 선각으로 나눌 수 있다.

형태는 겨우 윤곽선만으로 볼 수 있는데 돌이끼 까지 끼어 있어 특별한 조명을 비추지 않으면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여기 새겨진 상들은 법주사 창건설화와 관련된 의신 조사와 진표 율사의 일화들이다. 스님들과 등에 경전을 실은 몇 마리의 소 그리고 말 등의 모습에서 법주사의 개산주인 의신 조사가 인도에서 경전을 구해와 속리산 으로 들어왔다는 설화와 진표 율사의 법주사 창건 설화 중 달구지를 끌던 소가 무릎을 꿇고 울거 나, 달구지를 끌던 사람이 삭발염의하고 길상초가 난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법주사 창건과 관련한 설화를 압축해 놓은 법상종 신앙의 기념비 적인 조각이지만 한눈에 파악이 안 된다.

사진:최배문
사진:최배문

 

현재 추래암의 마애불에서 대웅보전 쪽으로 백보쯤 가면 산호대 옆에 거대한 금동대불이 있다. 33m 황금색 불상은 법주사라는 거대한 배의 돛대처럼 하나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수직으로 곧추선 이 거대한 매스의 금동대불로 인해 천 년전 바위 면에 새겨진 평면적인 마애불의 존재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고 더욱 외곽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러나 이곳 마애불상군들은 지장보살과 미륵보살 그리고 미래에 오실 미륵불들을 예경하는 미륵신앙의 모태적인 공간이자 상징이다. 따 라서 오늘의 법주사가 있게 된 개산조인 의신 조사, 창건주인 진표 율사의 수행과 전법과정에서 미루어 보면 이곳 마애불상군은 각각 따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계성을 갖고 있다. 물론 미륵불상이 주불이고 지장보살상은 진표 율사가 수행 중에 가피와 증명을 받은 상황을 말해준다.

이 미륵불의상과 지장보살상은 진표 율사에게 계본 戒本 과 간자 簡子 를 내려준 장면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 진표 율사는 가사를 수하고 합장하고서 우리들에게 미륵불을 친견하고 용화세계를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지금부터 계 戒 를 지키고 몸과 마음을 챙겨 십선 十善 을 행하여야 한다고 말이다.

 

이성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4회 개인전과 270여 회의 초대, 기획, 단체전에 출품하는 등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국 마애불의 조형성』 등 다수의 책을 썼고, 현재는 한국교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서 후학 양성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성도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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