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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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 스님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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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구름처럼

내가 스님을 처음 뵌 것은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서였다. 그 때 무문관에는 세 분의 스님이 계셨는데 육년 동안 문 밖 출입을 하지 않고 도를 닦았다.

삼층으로 된 석조 건물에는 밥만 넣어 줄 수 있는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무문관 시자가 되어서 공양 때가 되면 공양을 날라드리고 몸이 편찮을 때면 시자의 특권으로 들어가서 약을 발라 드리기도 했다.

그때 스님은 갑바로 된 두꺼운 천에 물을 들인 검은 승복을 걸치고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계셨다. 그런데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그곳이 무문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장길산이나 임꺽정을 만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문관에 입방한 지 삼 년 쯤인가 지날 때 였으니 그때 스님의 나이는 삼십이 안되었을 것이다.

나는 도인이 되면 산신령처럼 머리와 수염을 휘날리며 구름을 타고 안개속으로 출입을 하는 것 쯤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절에서 본 큰스님은 하나같이 머리를 깎고 할아버지처럼 다니시는걸 보고 약간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밥구멍만 뚫린 막힌 독방에서 육년동안 도를 닦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기대와 호기심을 일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께서 이명래 고약을 가지고 들어오라 했다. 등에 종기가 사마귀만하게 자리를 잡았고, 그 자리에 고약을 불이 녹여 붙여 드렸다.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고 좌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이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이 궁금한 나에게, 스님은 왜 머리깎고 절에 왔느냐고 묻지 않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 후에도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을 자주 보았다.

출생지의 고향만을 의미하는지, 그 이전 인간 자아의 본래 고향을 물으시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도 사람을 처음 대할 때면 어김없이 그 고향을 묻곤 한다.

현대인들은 고향에 대하여 낯설다. 사람들은 이제 그 고향을 묻는 것이 웬지 촌스럽고 실례인 듯 하여 그 고향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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