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雪峰) 스님과의 노상대면(路上對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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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雪峰) 스님과의 노상대면(路上對面)
  • 관리자
  • 승인 2007.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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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그늘 5, 성철스님

성철 스님은 당신이 전화를 거는 것은 물론, 받는 것도 싫어 하셨다. 그것은 당신의 짙은 사투리와 빠른 말씨 때문에 상대방이 스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므로 중언부언해야 하는 것도 싫지만 상대방이 잘못 알아듣고서 오해할까봐 전화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보통은 시자(侍者)나 옆에 있는 사람이 전화를 중개하기 마련이다.

4·19혁명이 일어난 해의 초가을, 오후 5시경에 부산 광복동 거리에서 우연히 스님을 만났다. 이(齒)를 치료하기 위하여 부산에 오셨는데 지금 치과에 다녀오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초가을이라고는 해도 부산의 날씨는 노염(老炎)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스님은 두루마기를 입지 않은 동방아 차림이었다. 마치 잠깐 문 밖을 산책하는 그런 가벼운 느낌을 받았다. 어디 가까운 그늘에 들어가 쉬면서 스님께 무엇이든 대접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스님은 사양하셨다.

그 이유인즉슨, 우리는 만날 계획이 없이 우연히 만났고 나에게는 이미 계획된 일이 있을 것이므로, 우연한 만남을 위해서 나의 계획된 일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친구와 술 마시는 일뿐이라 하여도 그것도 어기는 것은 옳지 않다 하셨다. 그리고 내일 일본 서점에 볼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 하시면서 당신이 묵고 계시는 곳의 전화번호를 일러 주셨다.

다음 날, 오전 11시경에 전화를 걸었다. 주인인 듯한 부인이 받기에 스님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부인이 스님께서 공양을 하고 계시니 무슨 이야기인지 전해 주겠다고 해서 스님과의 약속을 말하고 언제쯤 스님에게 가면 좋을지 스님에게 물어봐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내 귓전을 때린 목소리는 뜻밖에도 스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먼 곳에 있지 않으면 지금 오라는 말씀이었다. 집 주인에게서 위치를 물어 찾아간 곳이 당시의 부산역 건너 편에 있는 부산호텔인지 하는 왜정 때부터 있던 여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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