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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경영] 기업은 부도를 넘어 불멸을 지향한다

|    부도는 기업인에게 벼랑 끝 고통을 유발  

MS코프는 부산에 있는 산업용 가스 회사이다. 창업자 전원태 회장은 1973년 25세 때 부친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혀서 사업을 시작했다. 몇 년 뒤 큰 폭발사고가 나서 직원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원가를 절감하려고 사람을 줄인 결과 관리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처음으로 사업이 망하는 경험을 했다. 이후 공장에서 숙식하며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저녁을 먹지 않았는데, 배가 고파 일찍 눈이 떠지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고민하고 돈을 빌리러 다녔다. 

1983년 다시 부도가 났다.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다가 죽지 않고 병신만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통영의 한 무인도에 들어가 40일간 혼자 지냈다. 말문을 닫고 생쌀을 씹으면서 버텼다. 그러다 하루는 종일 눈물이 흘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야 이놈아, 네가 바보냐!”라며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 그곳에 와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 대학노트 세 권 분량의 반성문을 내리 써 내려갔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었다.

전 회장은 두 차례 부도를 딛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은 7개 계열사에, 직원 340명, 매출 1천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회사가 안정되고 난 후에 부인이 물었다. “당신, 사업에 중독된 것 같다. 공장해서 뭐 할 건데?”라고. ‘10년은 먹고살려고, 10년은 떼돈 벌어보자고, 다음 10년은 남에게 지기 싫어’ 사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처럼 부도가 나서 고통받는 기업인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2011년 20억 원을 출연해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을 설립하고 통영 죽도에 연수원을 마련했다. 그의 좌우명은 ‘허밀청원虛密淸圓, 비워서 맑은 원을 채운다.’ 지극히 불교적이다. 

전 회장의 부도·재기 경험이 연수원 교육방식에 녹아있다. 배가 고파야 정신을 차린다고 하며 저녁밥을 주지 않는다. 해안 절벽 위 텐트에서 자게 해 고독 속에서 자신과 싸우도록 한다. 명상 등 마음 닦기를 강조하며 경영기법은 아주 조금만 가르친다. 지금까지 320명이 교육을 마쳤고 그중 200명이 재창업을 했다. 재기에 성공한 수료생들이 펀드를 조성해서 후배들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은 매 순간 생존을 놓고 사투를 벌인다. 경쟁에서 지면 적자가 나고 누적되면 부도로 내몰린다. 부도 기업들 중 극소수만이 재기에 성공한다. 부도의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다. 자살을 택하거나 그 직전까지 가는 기업인들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인은 고통 속에 살아야 하고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부처님은 생로병사 고통을 직시하고서 출가를 하셨다. 죽음을 해탈하는 깨달음을 얻어 치유의 길을 보여주셨다. 이 순간 수행자들은 생사일대사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 중이다. 불법은 죽음의 관점에서 고통을 바라보라 하고 실천 해법을 제시한다. 팔정도는 죽음에 대한 정견, 죽음에서 불퇴전하는 정정진, 죽음을 넘어선 적극적 정명을 가르친다. 불교가 기업 부도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앞장설 때이다.  


|    불방일, 불살생, 불생불멸로 부도의 고통을 치유    

탐진치가 기업을 부도로 내몰고 고통을 키운다. 기업인의 탐욕이 구성원들을 분노케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식이다. 인용명仁勇明으로 탐진치에서 벗어나야 부도 가능성이 낮아지고 재기가 순조롭다. 주지에게 요구되는 인용명 자질이 기업 부도에 응용되니 법고창신이다. 부도와 그 고통이 한마음 작용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불교 용어에는 유독 불不이 많이 등장한다. 어리석은 중생이 집착을 잘해서 행동을 금하는 어법을 썼다. 그런데 매이지 말라는 그것에 붙잡혀 생각이 멈추고 행동은 굼뜨다. 하지 말라는 것은 최소·최저 기준, 하는 것을 자각과 자행自行으로 열어두었다. 불不은 죽음과도 같은 격심한 고통에 맞서 간절하게 치유하라는 뜻이다. 불살생은 인용명의 인, 불방일은 용, 불생불멸은 명의 적극적·구체적인 표현이다.  

불살생, 죽을 운명들에 대해 자비행을 실천해야 한다. 부도는 생명을 억압하고 죽음을 부르는 악연의 결과이다. 평소는 물론 어려움을 당해서도 불살생의 선근을 심어야 악연에서 벗어난다. 부도에 몰린 기업인이 종업원 급여를 챙기고 채무변제에 진정성을 보이면 나중에 재기할 수 있다.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내줘 급한 불을 꺼주기도 한다. 자신이 희생해서 이해관계자들을 살리는 자비심은 주위에 감동을 준다. 불살생을 행하는 기업은 부도가 잘 나지 않으며 나더라도 고통이 덜하다. 

불방일, 마음을 다잡아 매진해야 한다. 기업은 긴장이 풀리면 위험하고 게으르면 위기에 처한다. 생존이 위협받아야 노력하며 고통을 이겨내면서 역량이 커진다. 유도선수 김재범은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 말했다. “지난번에는 죽기 살기로 해서 은메달을, 이번에는 죽기로 해서 금메달을 땄다.”고. 기업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심·진력해야 어려운 고비를 넘어선다. 

불생불멸, 대자유의 사생일여死生一如로 살아가야 한다. 선가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한다. 왜 살리지 않고 죽이라 할까. 생사에 대한 집착을 없앰이다.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부처를 어떻게 죽이나.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봄이다. 세포들의 생멸을 바탕으로 개체가 생존한다. 개체의 생사가 어우러져 생태계가 보전된다. 온갖 생명이 한 죽음으로 돌아가고 거기에서 새 생명들이 이어간다. 불생불멸의 중중무진이다. 

부도는 직시하고 극복해야지, 회피하거나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부도와 평소 경영을 시공간으로 구분·차별하는 것은 어리석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에 앞서 필사즉생必死卽生을 말했다. 죽음을 각오해서 살아남자, 아니 내가 죽어 세상을 살리자는 호소였다. 사생일여를 솔선해서 주위를 감동시켰고 기적적으로 승리를 했다. 기업인도 자신을 죽여야 기업을 구할 수 있다. 탐진치를 소멸시켜 인용명으로 다시 태어나야 불멸의 길로 나아간다. 

   
|    불교가 죽어서 기업과 세상을 살리는 길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미가 생사를 갈랐다고 보고했다. 의미는 죽어가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그 무엇이다. 죽음 앞에서 의미를 추구함은 당위, 의미를 통해 활력과 행복을 찾음은 현실이다. 불법에 죽음의 의미가 나와 있다. 수행·보살행은 죽음을 넘어서도록 하는 의미의 실천이다. 

생존사투를 순화시키는 불법의 원리를 기업에 적용해야 한다. 자비심을 갖고 분노를 누르며 지혜롭게 경영하는 것이다. 불교가 부도를 방지하고 재기를 지원하는 플랫폼이 되면 어떨까.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서 지혜를 주고 치유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부도 문제를 해결하면 먹고사는 세속 고통이 그만큼 줄어든다. 

만해 스님이 친일하던 본사 주지들을 모아놓고 호통쳤던 적이 있다. “너희들이 송장보다 더 더럽다.”고. 썩은 육신보다 못한 죽은 마음들에 대한 질타였다. 마음의 죽음이 고통의 빙산을 초래했으며 그 꼭지점에 기업 부도가 있다. 빙산 꼭지점에서 진일보, 불교가 죽어있는 마음들을 되살려야겠다.

주변의 냉혹함과 불공정이 부도 기업인에게 고통을 준다. 고통을 이겨내도록 하는 최후 보루는 기업인 마음이다. 마음 관리는 불교의 본질이자 가장 잘하는 것이다. 불교가 기업인 마음을 상담해주고 재생·재활 출구로 이끌어야 한다. 참선의 효능이 이미 검증되었으니 눈 밝은 수행자가 가져다 쓰면 된다. 

직장인은 해고될까 불안하고 실업자는 먹고사는 것이 막막하다. 힘과 돈이 없는 약자는 죽음과 너무 가깝고 강자는 너무 멀다. 약자는 불방일로 일자리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강자는 놀면서 호의호식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 불살생으로 해고를 자제하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불생불멸은 취업·실업의 장벽을 낮추고 고통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웬만해서 망하지 않고 영세기업들은 죽음이 일상이다. 영세기업이 죽어 대기업을 살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영세기업은 불살생, 불방일, 불생불멸을 실천해서 생존부터 도모해야 한다. 자신은 강해지고 대기업은 허가 찔려 구조의 습習이 무너질 것이다. 불교는 영세기업의 도반이 되어 동행을 모색해야 한다. 

불교는 교단의 역할이 미흡하고 발전이 정체된 듯하다. 자신과 세속의 죽음에 둔감하고 무지해서 벌어진 일이다. 불법이 쇠퇴하는 말법시대인 탓일까. 수승한 불법과 수행자들의 정진이 불교를 살아있게 하는 의미이자 힘이다. 부처님의 관 밖으로 내민 발에서 죽음의 의미를 보도록 하자. 출가자들의 청정·용맹한 힘을 받아 자비와 용기를 북돋워야겠다. 불교부터 죽음을 불사하고 불방일, 불살생, 불생불멸을 실천해야 한다. 불교가 죽어서 기업과 세상을 살려야 한다.            

 

이언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                                                    

 

이언오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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