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하도 잠이 오지 않아 물이라도 마시려고 부엌에 나갔다가 커다란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살충제를 찾다가 없어서 그냥 돌아오니 이미 그놈은 사라지고 없었다. 재빠른 작은 바퀴에 비해 커다란 외래 바퀴는 행동이 어눌해서 잡기가 쉽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벌레 잡기에 취약한 나는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살생의 순간에 대한 불안감일지도 몰랐다. 붓다는 정말 아무리 해로운 벌레라도 생명 있는 것은 죽이지 말라 하셨을까?
누군가 내게 답해주면 좋겠다. 이런 벌레는 죽이고 이런 벌레는 죽이지 말라고. 이름 모를 모호한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그놈을 살려줄지 말지 고민하는 나를 바라보며 어이없을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고야마는 유일한 벌레가 바퀴벌레다. 이롭고 해로운 것에 대한 분별망상일지도 모르나, 사실 우리는 대상에 대한 분별없이는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나갈 수가 없는 법이다. 사라진 벌레가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잠시 들면서 그놈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번식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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