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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말의 사료를 드신 붓다분노와 원망과 자학 없이

세상사는 실로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고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다.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나도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나에게 악의적인 사람에게는 나도 악의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는 인간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이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되갚아주는 것이 세상살이에서는 정의正義로 통한다. 하지만 붓다는 그런 정의를 부정하셨다. 왜일까? 그 정의의 실현이 고통의 해소가 아니라 새로운 고통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 하지 마라.”고 하신 붓다의 말씀은 백 번 천 번 지당하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그 실상을 뼈저리게 절감하고도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싶은 욕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그 불편함과 불쾌함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버리고, 텅 빈 허공처럼 타인의 모욕적 언사와 폭력적 행태를 저항 없이 수용한다는 것, 이는 실로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추위가 닥쳐보아야 소나무 잣나무가 쉽게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나 보다. 

“나는 왜 붓다를 존경할까?” 

한때는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과 부드러운 그 미소에 반한 적이 있었고, 한때는 왕과 귀족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군중들이 귀의하고 살인마와 창녀까지도 단숨에 제도했다는 영웅담에 부러운 적도 있었고, 또 한때는 심오하고 진실한 말씀에 매료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 지금 “당신은 왜 붓다를 존경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분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언젠가 붓다께서 사위성에 머무실 때였다. 

코살라국의 서부에 있던 웨란자의 통치자 악기닷따 바라문이 사위성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정 도중 붓다의 명성을 들은 악기닷따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기원정사로 찾아왔다. 소문대로 붓다는 황금처럼 빛나는 풍모에 그 가르침은 불꽃처럼 맹렬하였다. 붓다에게 감복한 악기닷따는 기원정사를 떠나면서 호기롭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번 우기에는 제자들과 함께 저희 웨란자로 오셔서 안거하소서.”

붓다께서는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고, 우기가 다가오자 500명의 비구와 함께 웨란자로 향하셨다. 그런데 정작 붓다 일행이 웨란자에 도착하자 악기닷따는 마중은커녕 문까지 닫아걸고 대면도 하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웨란자는 서부 변방의 낯선 땅이었고, 그곳 사람들은 붓다가 누구인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초대한 사람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해 웨란자는 기근이 들어 식량이 풍족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500명의 비구가 3개월간 숙식을 해결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다. 악기닷따의 약속만 믿고 먼 길을 온 비구들은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마을로 걸식을 나선 비구들은 빈 발우로 돌아오기 일쑤였고, 누군가 식은 밥 한 덩이라도 얻으면 서로 나누어 간신히 주린 배를 달래야만 했다. 오랜 굶주림에 비구들은 하나같이 시들어갔다. 제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청했지만 붓다는 거절하셨다. 

“이미 정한 규율이다. 안거하는 장소는 도중에 바꿀 수 없다.”

그러자 목련이 안거처를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이 북쪽 지방으로 가서 식량을 마련해 오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붓다는 단호했다. 

“목련이여, 그대의 신통력이라면 그곳의 음식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숙세의 과보가 익어 떨어지는 것은 바꿀 수 없다. 허락하지 않겠다.” 

결국 굶주림에 시달리던 비구들이 하나둘씩 병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마침 바라나시의 목동들이 드넓은 목초지를 찾아 웨란자로 오게 되었다. 그들은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에 대한 명성을 익히 들어 아는 자들이었다. 목동들은 마을에서 빈 그릇으로 나오는 비구들을 보고 다가가 물었다. 

“힘들고 피곤해 보이십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비구들의 사정을 들은 목동들은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 

“스님들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어쩌지요. 저희도 가진 양식이 거의 떨어졌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사료용 겉보리뿐인데 이거라도 잡수실 수 있겠습니까?” 

“말이 먹을 양식을 저희에게 주시면 저 말들은 무엇을 먹고요?” 

“마침 풀이 잘 자라 말을 살찌우기에 충분합니다.” 

목동들은 가져온 사료의 반을 덜어 비구들에게 주었다. 비구들은 쭉정이가 수북한 겉보리를 그대로는 먹을 수 없어 돌에 갈고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안거 일정에 맞추어 각자의 몫을 똑같이 배분하였다. 붓다와 자신의 몫을 챙긴 시자 아난은 그 보릿가루를 그냥 올릴 수 없었다. 돌에 갈았다고는 하지만 겨와 가시랭이가 수북하고 딱딱하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아난은 한가득 보릿가루를 채운 발우를 들고 마을로 들어갔다. 

마침 저녁을 지으려고 집집마다 절구질이 한창이었다. 아난은 거리를 돌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어 건너지 못한 이들을 건네주고, 해탈하지 못한 이들을 해탈케 하며, 멸진하지 못한 이들을 멸진케 하고, 태어남・늙음・질병・죽음・근심・슬픔・괴로움・번민을 벗어나게 하는 분이 계십니다. 붓다이신 그분이 지금 이곳에서 안거하고 계십니다. 누가 이분을 위해 이 보릿가루로 밥을 지어주시겠습니까?”

한참이나 거리를 맴돌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난의 목이 쉴 무렵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한 여인이 다가왔다. 

“그렇게 훌륭하신 분의 공양이라면 제가 짓겠습니다. 힘닿는 대로 다른 분들의 공양도 제가 지어 드리겠습니다.” 

여인은 키질을 하고 다시 절구질을 하였고, 고운 보릿가루를 쪄서 떡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떡을 발우에 가득 담아 아난의 손에 들려주었다. 아난은 그 발우를 들고 숲으로 향했다. 착잡했다. 세상 누구보다 귀하신 분이 말의 사료를 잡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그런 아난의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붓다는 그 발우를 받아 평상시와 다름없이 맛있게 잡수셨다.

결국 아난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아난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다 부처님께서 미소를 지으셨다. 

“아난아, 이 음식은 꿀처럼 달콤하구나!”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현세의 쾌락에 초연하라고 가르치셨지만 ‘가난 속에서도 행복하기(貧而樂)’란 실로 어렵다. 고급아파트 옆 판자촌에 살면서 활짝 웃고, 밍크코트를 걸친 귀부인들 틈에서 세일로 산 만 원짜리 티셔츠를 걸치고도 당당하며, 한우 등심을 굽는 사람들 틈에서 국밥 한 그릇을 달게 먹기란 실로 어렵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막상 그런 처지에 맞닥뜨리면 분노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자학하지 않기가 어렵다.

하지만 붓다는 행복해하셨다. 붓다는 그런 분이셨다. 붓다의 아름다움은 웨란자를 떠나는 장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안거가 끝날 무렵이 되자 붓다는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성으로 들어가 바라문 악기닷따에게 ‘그대의 나라에서 안거를 마쳤으니 이제 다른 나라로 유행을 떠나겠다.’고 전하라.”

아난은 발끈하였다. 

“세존이시여, 그 바라문이 붓다와 비구들에게 무슨 은혜를 베풀었다고 이러십니까? 그의 초대로 이곳으로 와 이 고생을 했는데 작별인사를 전하라니요?”

그러자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의 손님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느냐? 대접이 시원찮았다고 떠날 때 주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손님의 도리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는 만큼 실천하는 사람이고, 그 앎으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붓다는 ‘아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아는 사람답게 행동한 사람, 즉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붓다는 정녕 그런 분이었다. 나는 언제쯤이나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은 나에게 그리하셨지만 나는 당신께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

 

성재헌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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