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지금도 윤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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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지금도 윤회하고 있다
  • 관리자
  • 승인 2007.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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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연이야기

부처님께서 도솔천의 호명보살로 계실 때 하계(下界) 중생들이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 것을 보시고 그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제석천, 사천왕 등을 시켜 인도의 16개국을 두루 살피게 하신 뒤 그들의 보고에 따라 강생할 자리를 가비라국 정반왕(淨飯王)가에 정하셨다. 그리고 백상(白象)을 타시고 성모(聖母)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 잉태하실 때 도솔천의 같은 동료들이 후세에서 인연제자가 되기 위해 뿔뿔이 내려와서 대신 등 인연있는 집안에 태어나게 되었음은 바로 그와 같은 인연에 기인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인연이 참 묘하다'하는 말을 자주한다. 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매일 매일의 나의 생각과 행위가 상호 보완하면서 윤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반드시 어디에서인가 인연을 갖고 있다. 다만 그 인연이 깊고 얕음이 있을 뿐이다.

나의 어머님은 딸 둘을 낳고 아들을 낳기 위해 할머님과 함께 절에 가서 칠성공을 드렸으나 세 번째에도 역시 딸을 낳아 이름을 칠림(七林)이라고 지어 불렀다. 이에 중단하지 않고 할머님과 어머님은 시골 암자에 가서 아들을 낳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려 잉태를 하였는데 임신 6개월에 6·25사변이 일어났다. 임신 6개월이 된 육신을 이끌고 피난을 가는 도중 하늘에는 온통 사방으로 대포의 파편이 교차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님은 동네 앞 빽빽하게 우거진 콩밭사이 골에 몸을 엎드렸다. 그러나 하늘을 수놓던 대포 파편이 jajsla의 옆구리를 때렸다. 길이가 약 7내지 8㎝정도의 파편이 박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도저히 살 가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하게도 미국 의료지원단에 수송되어 약 1년동안 병간호를 잘 받아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살 수 없다고 하였으나 산모도 애기였던 나도 살 수 있었던 것은 다들 기적이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님의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기도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6·25 발발 후 음력 11월 29일 새벽 목에 태를 감고 태어 났다고 해서 집에서 태식(胎植)이라고 불렀다. 시골 사람들은 "집안에 씨가 될려고 하니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았다."고 말을 한다. 호적에는 집안 항렬에 따라 현재까지 경호(敬浩)라고 부르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집안의 씨라고 말하기보다 부처님의 씨(부처님의 인연 공덕)가 아닌가 생각된다.

경남 합천 해인사로 가는 입구인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중학교는 시골에서 공부하고 대학, 대학원은 대구에서 공부를 하였다. 대학교수로 가느냐 연구소로 가느냐 하는 중에 한양 땅에 있는 한국전력 기술연구원에 첫 직장을 갖게 되었다. 명동입구에 있는 서울전력관리본부에서 첫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게 되었다. 시골 촌놈이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에는 많은 외로움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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