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만나다] 유식唯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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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만나다] 유식唯識 (9)
  • 김사업
  • 승인 2017.05.3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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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의 수행 5단계와 지혜 그리고 복덕 - 유식唯識(9)
김사업

유식의 수행 5단계와 지혜 그리고 복덕 - 유식唯識(9) 

오위五位 - 중생에서 부처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본다. 마음은 항상 얻으려 하고, 몸은 늘 대가를 바라고 움직인다. 설혹 얻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해도 그것 또한 더 고상한 것을 손에 넣기 위한 자기기만일지 모른다. 이런 모습이 너와 나의 자화상은 아닐까? 외면하고 부정하고 싶지만 끝내 부인할 수 없는 자화상.

자화상이 이런 모양을 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말나식에 있다. 말나식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 선천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집착하는 마음이다. 단 한 찰나의 멈춤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각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지만 명확하게 “나! 나!” 하면서 집착한다. 심지어 숙면 중일 때도 말나식의 작용은 멈추지 않는다.

말나식을 발견한 것은 유식의 큰 공헌이다. 깊숙이 숨어 있는 암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암은 숨길 것이 아니라 암 그대로 보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말나식은 유식에서 말하는 수행 5단계 중 세 번째 단계인 견도見道에서부터 그 작용이 멈추기 시작한다. 견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무분별지無分別智, 즉 분별이 없는 지혜가 생한다. 쉽게 말해 번쩍하고 한소식하게 되는 것이다. 견도에서 이 무분별지가 생해야 말나식의 작용은 멈추기 시작한다.

따라서 견도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말나식의 아집我執 작용에 물들고 만다. 선행을 하더라도 ‘내가 했다’는 때가 묻어 자기도 모르게 보상을 바라게 된다. 번뇌가 묻은 선, 즉 유루선有漏善이 될 뿐이다. 유루에서 ‘루漏’는 무엇이 샌다는 의미인데 불교에서는 ‘번뇌’의 의미로 사용한다. 번뇌는 안이비설신의의 6근에서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유루有漏는 번뇌가 있다는 뜻이고, 무루無漏는 번뇌가 없다는 뜻이다.

유루선으로는 세속적 행복을 얻거나 사후에 천상에는 태어날 수 있으나 해탈은 불가능하다. 말나식의 작용이 멈춰, 번뇌의 때가 전혀 끼지 않은 무루선無漏善을 행해야 해탈에 이를 수 있다. 견도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한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유식에 따르면 중생은 다음의 5단계 수행을 거쳐 부처가 된다. 자량위資糧位ㆍ가행위加行位ㆍ통달위通達位ㆍ수습위修習位ㆍ구경위究竟位가 그것이다. 이 중 세 번째 단계인 통달위를 견도라고도 부르고, 네 번째 단계인 수습위를 수도修道라고도 부른다. 이 5단계의 수행을 통틀어 부르는 용어가 오위五位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생각이나 말이나 육체적 행동 중의 어느 하나이며, 유식의 입장에서는 이 셋은 모두 식(마음)의 작용에 다름 아니다. 모든 행위는 일어남과 동시에 아뢰야식에 그 행위와 똑같은 성질의 종자가 심어진다고 앞에서 말했다.

종자는 여러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그중의 하나가 신훈종자新熏種子와 본유종자本有種子의 구분이다. 수많은 윤회를 해 오면서 어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그것에 의해 심어지는 종자를 신훈종자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본래부터 아뢰야식에 계속 있어 온 종자가 있는데, 이를 본유종자라 한다.

또한 종자를 유루有漏종자와 무루無漏종자로 구분하기도 한다. 유루종자란 번뇌 종자를 말한다. 무루종자는 완전히 청정한 지혜의 종자, 깨달음의 종자를 가리킨다. 유식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본유무루종자本有無漏種子’, 즉 ‘원래부터 있는 깨달음의 종자’가 있다.

선善종자는 선행 그 자체가 아니라 선행이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아뢰야식에 있다. 기온이 알맞고 땅이 비옥해야 꽃이 피듯이, 여러 조건(衆緣)이 갖추어져야 선종자에서 실제의 선행이 생한다. 마찬가지로 본유무루종자는 완전한 지혜, 곧 깨달음이 될 가능성으로서 있다. 조건이 갖추어져서 본유무루종자에서 실제의 지혜가 생하는 단계가 견도이고, 바로 그 지혜가 위에서 말한 무분별지이다.

본유무루종자가 무분별지로 생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그것은 견도 이전의 수행 단계인 자량위와 가행위에서 정법을 바르게 듣고 실천 수행한 결과로 심어진 선善종자들이다. 자량위와 가행위에서는 아직 말나식의 작용이 단절되지 않았으므로 이때의 선종자는 번뇌의 때가 묻어 있는 유루의 선종자이다.

이 유루의 선종자가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조건이 되어서 본유무루종자에서 무분별지가 생하게 되고, 이때부터 말나식의 작용도 소멸되기 시작한다. 본유무루종자가 무분별지의 씨앗이라면, 자량위와 가행위에서 심는 유루의 선종자는 이 씨앗을 싹트게 하는 토양ㆍ수분ㆍ양분 등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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