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50대 여성의 고민 --시어머니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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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50대 여성의 고민 --시어머니 되기--
  • 관리자
  • 승인 2007.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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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성학

우리나라 주부들을 보면 계모임 한 둘 정도 없는 사람이 없다. 계는 원래 푼돈을 모아 목돈을 만들자는 것이고 계원끼리 혼례나 상례 때 상부상조하자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러나 여성끼리의 계모임은 이같은 경제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우정을 다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또한 사교장의 구실을 겸하고 있다. 동창끼리의 계모임이 유독 시끄럽고 떠들썩하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친구 간에 스스럼 없이 수다를 떨어도 무관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계모임이 있는 날을 전업 주부인 여성들이 그동안 집안에서 자질구레한 가사일과 아내, 며느리,주부 역할 하기에 바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 생활에 묶여 있다가 친구와 만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잡다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면서 세상바람을 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옛날 우리의 할머니들은 우물가나 냇가 빨래터에서 매운 시집살이 이야기며 동네방네 소문도 전해 듣고 남의집 시어머니 흉도 보는 수다 떨기를 통해 숨통을 트고 억눌린 감정을 잠시 잠깐 풀어 놓곤 했다.
요즈음 여성들은 우물가 대신 식당에서 계 모임을 하면서 여성끼리의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계몰임을 시끌벅적한 '수다 떠는 여자들 모임'쯤으로 별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끼리 만나는 모임에서 떠드는 수다 떨기는 잡담이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그 속에는 수다를 떠는 여성 개개인의 일상생활이니 겪은 삶의 모습과 관심사가 형형색색으로 나타나 있고 여성들만이 겪은 '여성의 삶'이 자신의 목소리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갓 결혼한 20대 주부들의 수다 떠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이며 삶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당장 알 수 있다.
'너 임신했니/'로 서두를 뗀 이들 신세대 주부들은 출산, 애기 기르기, 시집살이의 어려움,전세집 옮기기 등에 집중돼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30대 주부계모임이라면 아기 출산을 이미 끝내고 교육이 시작 시기에 있는 자녀에 관한 이야기와 어머니 되기의 어려움, 시댁과의 갈등 등이 표출 된다.
40대 주부의 경우 이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수다 떨기로 식당은 더 큰 소리로 꽉차게 된다. 자녀의 대학 입시는 단연 화재의 중심이 되어 있고 자녀의 대학입학을 어머니 자격증과 결부시키는 현실 속에서 이 시대 여성의 수다 떨기는 입시 열기만큼 뜨겁다.
그러고 보면 여성들의 수다 떨기는 인생 주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져 간다. 임신이나 입시는 특정 시기에 집중하여 경험되는 것인 동시에 그 시기가 지나가면 갈등이 해소되고 수다 떨기의 내용에서도 사라지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고부갈등이나 부부갈등 등 한 집안에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갈등은 풀렸다가 다시 엉키는 성격의 갈등이기 때문에 세대, 나이에 관계없이 여성의 전 인생을 관통하는 공통된 수다 떨기 내용이라고 하겠다.
고부갈등은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이라는 점에서 결혼을 하는 여성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갈등이며 시어머니와 며느리 입장에 선 두 여성은 고부 간 갈등의 현실적인 피해자가 되곤 한다.
얼마 전 동창 모임에 갔다가 '고부 관계'란 제목으로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 적이 있다.
50대에 들어선 여성들은 자녀의 대학입시를 마무리하고 쉴 틈도 없이 큰 자녀의 결혼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에 고부관계와 시어머니 되기가 커다란 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결혼이란 당사자나 부모에게 하나의 변화를 예고하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제 50대 여성들은 자녀의 혼사를 전후하여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며느리의 역할을 해온 여성들이 갑자기 시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모두 '어떤 시어머니가 되어야 하나'로 고민하고 당황해 하는 것 같다.
60년대에 대학교육을 받은 이들은 자기 자신을 무척 진보적이고 깨인 여성으로 자부하고 있는 세대이다. 자신과 자신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신세대의 며느리와 어떤 고부관계를 맺어 나가야 할까'라는 문제가 커다란 압박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과거 자신이 경험한 억압적인 고부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 세대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은 결코 전 시대의 시어머니처럼 아들 집착적인 어머니가 된다거나 아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며 며느리의 인생을 간섭하는 시어머니가 되지 않겠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줄곧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예비 시어머니들의 고민과 딜레마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갓 시어머니가 되어 보여주는 이중적인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일부를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적인 한국의 어머니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거부하고 감정적인 시어머니 쪽을 닮아 있다는데 딜레마를 느낀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온 우리네 가족은 부계혈통을 존중하고 아들을 선호하는 사상이 남아있는 까닭에 아들을 낳은 여성으로 하여금 아들의 모든 것이-대입합격, 출세-어머니의 성공으로 동일시하게 하였고, 흉보면서 닮고 길들여지고 그렇게 왜곡된 자신이 또 한사람의 시어머니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채 살아왔다.
아들의 존재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정착시켜 주었고 이같은 가족 가치관은 여성들로 하여금 남아를 선호하게 하고 아들에게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물질적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태도를 대물림하게 한다.
아들의 결혼과 며느리의 출현은 소중한 보물을 잃는 듯한 상실감을 주었을 것이며 어디로 부터 오는 좌절감인지 모르면서 감정조절을 잘 하지 못함으로써 가족 모두를 불행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다.
아들에게 집착하지 않고 홀로 서서 자유로운 시어머니 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홀로 서서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 가는 고부 관계를 맺어 가기 위해선 우리 가족을 둘러 싼 가부장적 가족이 갖는 여성 억압적인 틀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그 안에서 길들여져온 비뚤어진 자신의 모습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자신의 불행과 경험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이성적인 머리와 내면화된 감정적인 가슴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끼는 시어머니는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아픈 노력이 요구된다.
공생관계로 왜곡된 모자관계는 상호배려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되어야 한다. 신식 시어머니 되기는 자기 개혁의 고통을 감수할 때에 가능한것이 아닌가 한다. '며느리를 본다.'는 발상은 전 시대의 유물이 아닐런지.
당사자의 계약관계로 출발하는 현대의 결혼은 어떤 의미에선 며느리를보고 사위를 보는 부계 가족 중심의 혼인과는 성격이 달라져 있다고 본다. 50대 여성의 시어머니 되기의 딜레마도 변화에 따른 과도기적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원각심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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