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죽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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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죽어야 산다
  • 관리자
  • 승인 2007.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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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뵙고싶은 큰 스님 - 향곡(香谷) 스님

향곡 스님은 1912년 경북 영일에서 출생하였으며, 1928년 내원사에서 운봉 선사를 뵙고 발심 출가, 1930년 조성월 스님을 은사로 사미 오계를 받고 득도하였다. 법명은 혜림, 1932년 부산 범어사에서 운봉 화상을 전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41년 대오하였으며, 1944년 운봉 선사로부터 임제정맥의 법등을 잇는 건당식에서 법호를 받으니 향곡이었다. 1947년 성철 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사에 동참하였으며, 그해 활연대오하였다. 한국불교 최대의 불사였던 불교정화운동에도 동참하였으나 무엇보다 마음의 정화를 강조하였다.

경남 월내의 묘관음선원에서 수행자들을 지도하였으며, 선암사, 불국사, 동화사, 선학원 등 여러 선방의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활달무비하게 선풍을 드날렸다. 말년에도 월내의 묘관음사에 주석하시며 후학을 제접하던 스님은 1978년 부산의 해운정사에서 사흘 전에 미리 죽음을 예견, 열반게를 읊으시고 입적하시니 세수 67세, 법랍 50년이셨다. 법제자 진제 스님, 상좌 혜운, 혜원, 혜기 스님 등 수많은 제자가 스님의 뜻을 올곧게 잇고 있으며, 스님 열반하신 뒤 법어집 『향곡 선사 법어』(향곡 선사 문도회)와 향곡 큰스님 평전 『청산의 메아리』(불교영상회보사)가 출간되었다.

*『향곡 선사 법어』와 『청산의 메아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주)

향곡 스님은 경허 - 혜월 - 운봉으로 이어지는 임제정맥을 계승한 현대 선종의 거봉이다. “납자 제접에 향곡만한 큰 그릇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행자들 사이에 명성이 드높았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시어 살아생전 법문집 하나 펴내지 않았다. 훗날 법제자인 진제 스님과 상좌 혜운 스님의 원력으로 법어집이 편찬되어 스님의 향기를 접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신심 깊은 부모님과의 인연으로 불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일찍이 출가한 속가의 형을 보러 갔다가 16세에 운봉 선사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출가하였다. 행자 때 운봉 선사의 시봉을 들면서 이미 선정삼매에 드는 수행정진을 계속하였으니 이 어찌 이생만의 인연일까 싶다.

스님께서 평소 크게 죽어야 산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던 것처럼 스님 역시 뒤로 물러서는 법 없이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문짝 닫히는 소리에 심안(心眼)이 환하게 밝아졌다. 한마디 이르라는 운봉 선사의 물음에, “천 마디 말 만 마디 이야기가 모두 다 꿈속의 꿈을 설함이니 모든 불조(佛祖:부처님과 조사스님)는 나를 속인 것입니다.”라고 답하여 흔쾌히 전법게를 받았으니 30세 때의 일이었다.

부처님께서 도반(道伴)은 수행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듯이 수행자에게 있어서 도반만큼 중요한 인연이 없다. 그런 면에서 향곡 스님이나 성철 스님이나 참으로 행복한 분들이다.

향곡 스님은 성철 스님의 편지를 받고 봉암사에서 함께 결사하여 정진하고 개혁운동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철 스님의 “죽은 사람을 아주 죽이면 산 사람을 볼 것이요, 죽은 사람을 살려내면 바로 죽은 사람을 볼 것이다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발심, 밥 먹고 잠자는 것을 잊고 정진하였다. 그러던 중 개울을 건너다 두 손이 걸을 때마다 앞뒤로 흔들리며 오가는 모습을 보고 활연대오, 게송을 읊으니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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