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현장] 지리산 칠불사
상태바
[불사의 현장] 지리산 칠불사
  • 사기순
  • 승인 2007.09.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행과 불사가 둘이 아니더이다

예부터 문수 보살의 상주처요, 부처님을 탄생시킨다 하여 불모산(佛母山)이라 하기도 하고, 백두의 맥이 흘러흘러 국토 남단에까지 이어졌다 하여 두류산이라 하기도 하고, 방장산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등 삼신산(三神山)중의 하나인 지리산은 어떤 숙연함마저 우러나게 하는 이 민족의 영산이다.

 이름난 산에는 이름난 절이 많기 마련이듯, 지리산에는 수많은 사찰이 자리하여 부처님의 법을 설하고 있다. 아니 지리산 자체가 설법을 하고 있다. 국토가 설법하는 것이다. 지리산에 있는 수많은 불도량(佛道場)중에서도 칠불사가 더욱 그 빛을 찬연히 발하는 것은, 칠불사를 찾는 기자의 마음을 이토록 설레게 하는 것은 우리의 조상이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신 성지이기 때문이리라.

 칠불사 가는 길은 내내 환희의 연속이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10리 벚꽃길은 화엄법계를 장엄하는 깨달음의 꽃수레요, 유난히 붉디 붉은 진달래꽃, 이름모를 들꽃과 파아란 차잎새도 깨달음의 향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칠불사도 좋다만은 옥보대(칠불사 내의 운상선원 자리)는 더욱 좋다'는 화개타령의 한 자락도 흥얼거리면서 반야봉 남쪽 기슭 해발800m 지점에 자리한 칠불사에 오른다. 잘 닦여진 산길을 오르면서 첩첩이 수놓여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어찌 불은(佛恩)에 감사하지 않을소냐. 부처님의 가피 아니라면 칠불사가 거기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고 참배객이 성지를 찾을 수도 없지 않은가.

 칠불사 초입에서 참배객들은 먼저 칠불사 창건 유래(서기 101년, 장유화상과 김수로왕의 일곱왕자가 운상원을 짓고 수도, 일곱왕자는 수도한 지 2년만에 성불했다고 한다.)를 간직하고 있는 영지(影池)를 만나게 된다. 모정(母情)이 병이 될 정도로 깊었던 김수로왕의 비(妃) 허왕후가 아들들을 만나기 위해 칠불사를 찾아왔다가 오빠인 장유화상의 호통으로 영지에 비친 모습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는 애환 서린 영지,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고 승천하는 일곱 부처님의 모습을 영지 속에서 보고 환희용약하여 칠불사 도량을 크게 일으켰다는 소중한 역사의 명소이다. 지금은 새롭게 단장한 칠불사의 모습을 곱게 담고 있는 영지(影池)를 통해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하고 있는데, 더엉…덩… 칠불원음종(七佛圓音鐘)이 지리산 자락을 부드럽게 휘감아 돈다.

 '원컨대 시주화주의 무량불심 공덕이 시방법계에 원음(圓音)으로 울려 퍼져 모든 중생 다함께 성불하여지이다.'라는 간곡한 서원이 참배객의 미혹한 마음을 깨우친다. 칠불사를 찾는 이마다 이 종소리 꼭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나라 처처에 사리처럼 박혀 있는 불도량을 참배할 때마다 느끼는 지극한 평화, 칠불사의 아늑함과 새로 지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리서리 깃들어 있는 상서로운 기운은 기자를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