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무겁게 뒤덮인 겨울거리에 바람은 몹시 사납게 칼부림을 하고 있다.
앙상한 몰골의 나목(裸木) , 공사장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장작불의 둔탁한 소리, 시내버스 종점에서 시장을 지나 언덕배기의 집까지 15분, 그 시간은 왜 그렇게 항상 길고 아득하게 여겨지는지. 을씨년 스럽고 허전한,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비탈길을 오를 때이면 나는 감기라도 걸린 듯 온몸은 찌뿌드드하고 멍해진다.
따뜻한 밥과 옷과 잠을 벌기 위해서 일상의 강물에 던져둔 그물을 거두고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귤이나 사과라도 한 봉지 사갈까, 아니면 만두? 아니 내일, 그래, 내일 사자.
바람 때문에 성냥불 켜기가 어렵다. 성냥개비를 여러 개 버리고 나서 겨우 담배에 불을 붙인다. 길게 내 뿜은 담배연기가 멀리 재빠르게 달아난다. 허공 깊숙히 희미한 겨울 달이 박혀 있다. 나는 차가운 손을 부비다가 바지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채 그 허공 하늘, 거대하고 심오한 창(窓)을 바라본다. 그 속으로 내 가벼운 몸이 빨려가는 듯 싶다. 정신도 덩달아서 출렁거린다.
이때 문득 어지럽고 눈부신 성에 꽃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늘 아침, 밤새 눈이라도 듬뿍 내렸을까 싶어 두꺼운 마직 커튼을 젖혔을 때, 눈 대신 유리창에 화려하고 창백한 성에 꽃이 푸석푸석한 겨울 햇빛을 받으며 피어 있었다. 나는 곧 사라질 그 꽃에 눈길을 주면서 시간의 계단을 거슬러 밟으며 그립고 쓸쓸한 추억의 숲속으로 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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